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안스카이 (문단 편집) ==== 단 한 사람을 위한 신문 ==== 황제 등극 과정에서 엽기적인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른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신문]] 사건이다. 위안스카이가 황제가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한 부류가 둘 있었다. 하나는 황제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 일반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근들과 가족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차기 황제를 노리던 큰아들 위안커딩(袁克定)이 있었다. 반면 둘째 아들 위안커원은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감우'라는 시를 지어 아버지가 황제 자리를 탐내는 것에 대해 걱정을 내비쳤다. 당시 중국의 언론은 모두 위안스카이의 권력을 두려워하여 군주제를 찬성했는데 일본 외무성이 중국에서 발행했던 신문인 순천시보는 위안스카이보다 강한 일본을 빽으로 업고 있어서 위안스카이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위안스카이는 공무를 보면서 시세파악을 위해 순천시보를 틈틈이 보곤 했는데 큰 아들 위안커딩은 황태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위안스카이가 순천시보를 보고 칭제를 포기할까 우려하여 위안스카이를 위한 순천시보를 따로 조작하여 군주제 찬성 여론을 싣게 했다. 이리하여 위안스카이 한 명만을 위해서 위조된 '위안커딩 특제 순천시보'가 위안스카이에게 계속 전해지게 되었고 위안스카이는 모든 여론이 자신의 즉위를 찬성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돤치루이]]나 [[펑궈장]], [[쉬스창]] 같은 인물들은[* 재미있게도 이들이 제제에 반대한 이유도 각기 다른데 돤치루이는 1912년에 군사를 동원해 공화국을 만들자고 위협해놓고 이제 와서 황제를 칭하는 건 명분이 없다고 반대했고, 펑궈장은 제국 체제에서는 자신이 후계자가 될 수 없다고 반대했으며, 쉬스창은 [[선통제]]를 복위시켜야 한다고 반대했다.] 위안스카이의 황제 즉위에 계속 반대하고 있었지만 위안스카이는 돤치루이를 좌천시키는 등 거의 막무가내로 밀어붙혀 그동안 위안스카이에게 충성하던 측근들도 반감을 품게 된다. 물론 대놓고 개길 힘이 없던 측근들은 대부분은 겉으로는 어서 황제에 즉위하라고 갖은 아양을 떨며 위안스카이의 황제 즉위를 환영하는 척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