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정척사파 (문단 편집) === 화서학파 === 화서 [[이항로]]의 학설을 토대로 한 학파로 경기 지방을 기반으로 두고 있었다. 화서학파는 흔히 유리론(唯理論)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되나, 사실은 [[이이(조선)|이이]]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과 [[이황]]의 주리론(主理論)이 혼합된 이기론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이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화서 이항로와 면암 [[최익현]], 의암 [[유인석]] 등이 있다. 이항로는 [[주자(철학자)|주자]]의 학설을 확고히 하고, 우암 [[송시열]]을 공자, 맹자, 주자를 뒤이은 도통의 계승자임을 주장하며, 송시열의 숭명배청론을 자신의 화이론과 연결하였다. 그의 이기론은 이이와 [[성혼]]의 학설을 절충했는데, 이(理)와 기(氣)가 상호적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理)가 기(氣)에 비해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이기론을 바탕으로 이를 지향하는 문화는 중화의 문화임을 강조하고, 중국과는 다른 이질적인 문화는 이(理)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사악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항로는 서양의 학문이 통화통색(通貨通色, 재화를 유통시키고 색정을 통한다)을 추구하는데, 이는 인욕(人慾, 전통적인 성리학적 관점에서 인심(人心)의 악한 부분이라 해석되는 개념)의 핵심으로 파악[* 화서의 경우, 통색보다 통화의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였다. 교역을 통해 상업이 발달하면 백성들이 사리사욕만을 추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북학파들의 주장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하였으며, 이를 추구하는 것은 이적(夷狄)보다 못한 금수(禽獸)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위정척사파의 서양과의 통상 반대의 기반이 되었다. 이항로는 단순히 이런 통상반대론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방법론인 내수외양(內修外攘)을 제시했다. 그는 서양의 물건들은 인간의 사치심을 유발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욕구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수입을 금지하고, 더불어 서학에 동조하는 이들을 처벌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항로는 단순히 척화론이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 말한다. 그가 바라본 근본적인 해결책은 성리학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있는 천리와 인욕을 분별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항로는 수신(修身)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의 마음가짐 여하에 국가의 안위가 달려있음을 역설한다. 인(仁)을 바탕으로 군주가 덕치를 펼 것을 강조했는데, 사동부승지겸진소회소(辭同副承旨兼陳所懷疏)에서 덕치를 확립하기 위한 방책을 제시했다. 병인양요 이후에 올려진 이 상소에는 조정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무력 증강을 꾀하고, 인망 있는 자를 중용할 것을 요청했으며, 특히 여기에 쓰여진 의려책(義旅策)은 이후 유림들의 항일 투쟁의 실천적 단서가 되기도 하였다. [[최익현]]은 이항로의 문하의 유학자로 대표적인 의병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