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기(명나라) (문단 편집) === [[주원장]]의 휘하에서 === 당시 [[홍무제|주원장]]이 이끌던 홍건군은 원나라 조정에 불만을 품은 민중들이 기반이 되는 세력이었다. 그 때문에 싸움을 잘하는 장수들은 많았을지 몰라도 식견이 높은 참모는 거의 없는 수준[* 서달의 전략적 식견이 매우 뛰어나긴 하였지만 주원장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주원장 이상의 [[대국]]적인 안목을 가진 참모형 인재는 존재하지 않았다.]이었는데 이는 홍건군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당시 주원장은 이선장의 보좌를 받고 있었지만 이선장은 군사(軍師)라기 보다는 내정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유기의 합류는 주원장의 세력에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 유기는 방국진 토벌 시기에서 활약한 진퉁 전략가였던 까닭에 주원장은 유기가 내놓는 의견을 귀담아 들었으며, 유기의 의견에 따라 [[군대]]를 움직였다. 당시 난징을 거점으로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주원장은 남부의 유력 군벌이었던 [[진우량]], [[장사성]]과 대립하고 있는 관계였다. 따라서 노선 잘못탔다가는 진우량과 장사성에게 [[다구리]] 맞고 박살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 유기는 강대한 진우량을 공격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 주장했다. 장사성은 틀림없이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지만 자기 세력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인물이기에 알아서 자멸할 것이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평했다. 유기의 진언대로 진우량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던 주원장은 이 사실을 간파한 진우량에게 선제 공격을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당시 진우량의 군세가 매우 강했기 때문에 주원장의 수하들은 모두 새파랗게 질려서 항복과 도주를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기만은 이 때 오히려 노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나중에 주원장이 따로 불러 의견을 청하자 항복과 도주를 주장한 제장들을 처형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겉보기에 강한 세력이니 깊숙히 끌어들인 후 힘이 빠졌을 때 역습을 가하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란 진언을 올렸다. 주원장 역시 유기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하여 작전을 펼쳤고 진우량의 침공을 무사히 격퇴시킬 수 있었다. 예상 외의 대승에 기뻐한 주원장은 유기에게 큰 포상을 내리려 하였으나 당장의 논공 행상보다는 기세를 몰아 진우량을 박살내야 된다고 주장했고 즉시 주원장은 병력을 이끌고 진우량과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후 계속되는 전투마다 시의적절한 계책을 내놓아 주원장이 진우량을 격파할 수 있도록 했고, 결국 [[파양호 대전|파양호의 결전]]에서 [[진우량]]이 전사했고 그의 세력을 붕괴시키는데 일조했다. 그 이후 중국 남부의 판도는 유기의 예상과 일치했다. [[장사성]]은 결국 자멸했고 나머지 반란군들도 강대한 주원장의 밑에 앞다퉈 복속해왔다. 이렇게 주원장은 중국 남부를 평정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서달]]을 총대장으로 임명하여 [[북원]]을 공격, 중국에 [[한족]] 왕조를 복원시키기에 이르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