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대인 (문단 편집) === 기원 및 분열왕국 시대까지 === 고대 이스라엘의 구성 민족인 [[히브리인]]은 [[메소포타미아]] 및 [[레반트]] 남부에 살았으나 나중에 가나안 일대로 이주했고, [[고대 이집트|이집트]]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집트에 있기도 하였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조는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능력을 발휘해 고위직에 오른 [[요셉(창세기)|요셉]]이 이후 친지들을 불러들인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이후 [[모세]]에 의해 이탈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구성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추측 가능하다. [[출애굽기]]는 유대인의 민족적 기원을 다룬다. 이들이 집단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수가 지나치게 팽창하자 이집트 당국에서도 억제 정책을 펼치게 되고, 이에 대한 돌파구로서 집단 이탈을 제시한 것이 이집트 왕족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히브리인에서 찾은 인물인 [[모세]].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이 [[단군]] 수준의 위인이라면 모세의 위치는 가히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친 것 쯤은 된다. 이들에게 최초로 집단적 주권의식을 주입시키고 자립의 길을 처음으로 이끈 인물이기 때문. 이들은 모세의 지휘 하에 이집트에서 이탈하여 자신들이 정착할 만한 지역을 탐색하는 것과 동시에 이동 경로에 있는 토착 세력들과 경쟁을 펼치며 약 사십 년 정도 떠돌게 된다. 서사적인 과장이 있을것으로 여겨지지만 성경에서는 장정만 60만명이라고 했는데 딸려있는 식솔들을 합하면 최소 약 300만명에서 최대 약 500만명이었다고 한다. [[여호수아]]가 [[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지휘하여 [[가나안]] 일대를 침략해 정복했고 [[기원전 10세기]]경엔 익히 아는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시대로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였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고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히브리인만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오해하는데 팔레스타인은 고대부터 다민족 지역이었다.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라 확실성이 부족하지만 히브리인 자체가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이주민족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주하기 이전에 이미 가나안족, [[히타이트|헷족]], 히위족, 브리스족,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여부스족 등 원주민 일곱 부족이 살았으며, 전쟁을 통해 원주민을 복속시키고 히브리인들이 지배민족으로서 팔레스타인에 자리잡은 내용이 씌여져 있다. 원래부터 히브리인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 히브리인의 도래 이전에 이미 선주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을 보면 [[블레셋|블레셋인]]과 히브리인들이 싸우는 영토 다툼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로 비유되어 나온다. 구약에는 히브리인들이 몇몇 이민족들을 멸절시키고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가긴 했으나, 일부는 그냥 남아있다가 이스라엘이 정착 후에 강성해지자 사역에 동원되고, 일부는 산으로 쫒겨가기도 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사사기 1장 27절~36절] 또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보면 블레셋인, [[암몬|암몬인]], [[모압|모압인]] 등 여러 민족들이 계속해서 히브리인들과 섞여 살고 있었다. 당시의 군장국가체제에서 민족개념이라는 것은 지역에 따른 부족개념이었다. 당시의 [[가나안]](Canaan) 지역은 오늘날의 이스라엘, [[레바논]], [[시나이 반도]], [[요르단]] 서부를 통칭하는 개념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민족들의 이름은 단순한 가나안 민족의 여러 부족개념으로 봐야한다. 한국 고대국가 시대에 부여, [[고구려]], 예맥, [[신라]], [[백제]], 가야 등의 수많은 부족국가들이 혼재했던 개념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언어들은 북서[[셈어파|셈어계]]에 속하는 언어로서 모두다 친연관계에 있었다. 가나안 지역과 [[페니키아]] 지역은 서로 많은 지역을 문화적 교집합으로 갖고 있는데,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 모압어는 서로 매우 가깝고,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가나안어파의 하위 어군으로 상호 방언관계를 이룬다. 자신이 유대인이기도 했던 《블랙 아테나》의 저자, 마틴 버낼 교수는 히브리 민족과 주변민족과의 관계사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히브리인과 [[페니키아]]인이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며, 진지한 언어학자라면 두 언어를 가나안어의 방언으로 함께 취급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라고 '블랙 아테나'에서 이야기한다. 즉 언어학적으로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는 알파벳의 표기가 다를 뿐, 한 쌍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의 관계를 연상해보면 된다. 또한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인 교통 중심지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수메르 문화, 이집트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그리스), 히타이트, 아시리아, 로마, 이슬람 제국 및 유럽 십자군 등의 지배를 받았다. 오랫동안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의 혈연적 관계도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애초부터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살았을 뿐만 아니라 역내외의 다양한 문화들이 오고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던 문화적 교통로이기도 했던 다민족-다문화 지역이었던 것이다. [[솔로몬]] 사후 히브리 지역은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으로 분열하여 히브리 민족도 이스라엘 왕국의 [[사마리아인]], 유다 왕국의 유대인으로 나뉘어졌고 결국 이 두 나라는 각각 [[아시리아]]와 [[신 바빌로니아]]에 패망하였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일상언어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히브리어는 종교 의례에나 쓰였다. 신 바빌로니아에 유다 왕국이 멸망한 이후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를 겪게 된다. 이렇게 본래 이스라엘땅을 떠나 해외에 정착하거나 떠도는 유대인 집단 또는 그 망명 자체를 [[디아스포라]]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