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도 (문단 편집) == 국내에서 == ||[[파일:attachment/rlawoduq.jpg|width=300]]||[[파일:attachment/chlalsgh.jpg|width=300]]|| || [[김재엽]] 선수의 경기 장면 || [[최민호(유도)|최민호]] 선수의 한판 장면[* 왼손이 [[다리(신체)|다리]]를 잡고 있다. 현 규칙에서는 이러면 지도 먹는다.] || 이제황의 저서 '신유도'에 의하면, 근대 유도는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서 1909년에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들여와 선보여졌다고 한다. 또한 1928년에 황성기독교청년회 유도부에서 유도 용어의 일부를 우리말로 다듬어서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후 일제 치하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 사이에서 유도는 널리 익혀져 전국 곳곳에 수많은 도장이 세워졌다. 특히 근대 [[중등교육기관]]이 중심이 되어 유도를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였고 이후 널리 전파하는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유도의 활성화에 부흥하여 경성제국대학 예과 주관 전조선 중등학교 유도대회(1926 - 1941)와 동경유학생무도회 주관 전 조선중등학교 유도대회(1929 - 1941), 그리고 연희전문학교 초청 전국중학교 유도대회(1930- 1941) 등이 개최되어 당시 중등학교 학생들의 심신단련과 친목도모의 장이 되었다. 각 중등학교들의 유도부 창단연도는 다음과 같다.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98131ac696b92baa|#]] * [[배재고등학교|배재]](1921), [[휘문고등학교|휘문]](1922), [[보성고등학교(서울)|보성]](1926), [[경신고등학교(서울)|경신]](1927), [[중동고등학교|중동]](1928), [[계성고등학교(대구)|계성]](1934), [[오산고등학교(서울)|오산]]·[[송도고등학교|송도]](1920년대) 등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38년에 이르러 모든 도장이 '강도관 조선지부'로 강제 통합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해방 후 1945년에는 조선인 유도가들의 모임인 '재경유도유단자'의 회원 백여명이 '조선유도연맹'을 결성해 중구난방이던 [[한국어]] 유도 용어를 통합하고, 미번역된 [[일본어]] 용어들을 다시 우리말로 다듬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태권도]]와 함께 격기종목 엘리트 체육으로 명성이 높다. 실력자도 많은 편이고, 역대 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량도 가장 많은 편이고, 금메달순으로 봐도 양궁, 태권도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효자종목이며, 실제로도 '''종주국 [[일본]]'''과 [[프랑스]], 구[[소련]]권 등을 제외하면 가장 최상위권의 실력을 자랑하는 유도 강국이기도 하다.[[https://en.wikipedia.org/wiki/Judo_at_the_Summer_Olympics|#]][* Medals by summer sport에 나온다. 총 43개의 메달 획득으로 금메달 수가 아닌 전체 메달 수 합계로는 양궁, 태권도보다도 많이 획득했다.[[https://en.wikipedia.org/wiki/South_Korea_at_the_Olympics|#]]] [[용인대학교]]가 유도로 매우 유명하지만[* 애초에 이 학교의 뿌리가 대한유도회 주도로 설립된 유도 학교였다.] [[추성훈]]이 대회에서 [[용인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것이 알려져서 체육계의 [[파벌]] 문제가 한동안 이슈화되기도 했다. 비단 [[추성훈]]뿐만 아니라 한국 유도계의 전설인 [[윤동식]] 선수 역시 파벌의 대표적인 희생양. [[http://outfield.egloos.com/3667279|#]] 올림픽 유도에서 최초로 메달을 획득한 한국 선수는 [[1964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재일교포]] 출신의 김의태[* 은퇴 후 모교인 덴리 대학 체육과 교수를 지냈다. 무도 관련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게 있는데 그것을 찾아보려면 일본식 이름인 야마모토 요시야스(山本義泰)로 찾아야 한다.]이며, 첫 [[금메달]]은 [[1984 LA 올림픽]]에서 안병근이 따냈다. 여성 선수로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김미정이 첫 메달이자 금메달을 따냈다. [[1972 뮌헨 올림픽]]에서는 재일교포 출신인 오승립이 한국 대표팀의 유일한 메달(은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그런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하나도 못 따는 노골드의 쇼크를 겪었다. 은메달 2 동메달 1. [[https://en.wikipedia.org/wiki/Judo_at_the_2016_Summer_Olympics|#]]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4 은6 동3 성적으로 종주국 일본 다음으로 2위를 했다. 우리나라의 유도 용어는 기술명, 규칙, 연습법, 예법 등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을 전부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해서 사용한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잇폰'과 '와자아리'를 '한판'과 '절반'으로 번역.] [[태권도]], [[검도]] 등과 함께 가장 인지도는 높은 무술 중 하나이다. 호신술 등으로 [[여성]]도 생각보다 꽤 배운다. 정작 유도는 높은 인지도와는 별개로 학생들에게 무슨 무술을 배우고 싶냐고 물어보면 막상 잘 나오진 않는 편이다. 몇몇 아이들은 무술을 배워서 돋보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유도는 [[태권도]]처럼 접촉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검도]]처럼 영상 매체로 접한 검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른들도 유도는 너무 거친 스포츠라는 인식 때문에 어린 자녀들에게는 유도보다는 태권도를 배우게 하는 경향이 강하고, 유도는 대체적으로 중학생 이상이 되면 그때서야 시키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21세기 들어선 [[종합격투기]]의 영향으로 주짓수나 [[킥복싱]], [[무에타이]]의 존재감이 많이 커지기도 했고, 또한 앞서 말했듯 둔중하고 무거운 무술이라는 이미지도 한 몫 한다. 유도부가 있는 일부 중/고등학교에서는 체육 시간 일부를 할애하여 가르치는 학교도 있고, [[경찰대학|경찰대]]나 각 군 [[사관학교]] 등에서도 [[태권도]], [[검도]]와 함께 유도 시간도 따로 있어 취사 선택 할 수 있으며, [[중앙경찰학교]]에서도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어 과정을 선택하여 이수할 수 있다.[* 단증 심사는 필수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이고, 단증을 따지 않아도 교육 과정 자체는 얼마든지 이수할 수 있다. 그리고 단증을 따기 위해서는 기본 커리큘럼 교육과정 이외 개인별로 일과 후 별도 추가 수련시간을 이수하여야 한다.] 2023년에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 유도가 아시안 게임 최초로 노골드의 수모를 당한 가운데 그나마 여자 +78kg급 [[김하윤(유도)|김하윤]]의 금메달 덕분에 남녀 통합 노골드의 수모는 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