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모 (문단 편집) === 피양육자와의 친분 === 유럽에서 유모를 고용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귀족]]이었다. 그리고 이 귀족여인들은 사교 활동을 하느라 아기를 거의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귀족 아이들은 유모를 친부모보다 더 가깝게 느끼곤 했다고 한다. 대귀족의 아이의 경우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얼굴을 마주하는 게 3~4살 쯤인 경우도 허다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누구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 어린시절 애착 관계의 절대적인 분량을 차지하는 존재이다보니 돌보는 아이가 젖을 떼고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보필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왕족/귀족 여자의 경우 결혼해서 친정과는 왕래도 힘든 타국으로 가더라도 유모만은 함께 가서 최측근으로 섬기는 경우가 있었다. 문자 그대로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 심지어 기원전 고대에 작성된 성경 창세기에도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시집갈 때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가 함께 갔다는 내용이 있으며, 드보라가 사망하여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문구까지 있다. [[18세기]]가 되면 일반인들에게도 유모제가 보편화되면서 1769년 프랑스 정부는 유모의 보수 문제만을 전담하는 유모국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며, 영국과 프랑스에서 낳아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고작 15명에 1명 꼴이었다고 한다. 근대 계몽주의 지식인들, 대표적으로 [[장 자크 루소]]나 [[린네]] 같은 이들은 이런 유모의 범람을 개탄하고 "[[모성애]]"의 개념과 모유 [[수유]]를 매우 중시했으며, 심지어 "[[포유류]]"란 단어도 이런 수유 장려 차원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다른 이유로는 사람을 "네발동물류"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반발을 줄이는 차원도 있었다고.][* [[https://www.jstor.org/stable/2166840?seq=1|관련논문]]] [[개신교]]에서도 "모성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여겼다. 아이들에게는 유모가 부모나 마찬가지인 존재여서 어른이 된 뒤에도 유모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못 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며 유모의 지위는 말이 고용인이지 사실상 [[하녀]]라기보다는 [[가족]]에 가까운 존재였다고도 한다.[* 동물의 [[각인]] 효과처럼, 아기는 영유아기 시절에 자신을 돌봐준 사람을 본능적으로 부모라고 인식한다. 특히 잦은 피부접촉과 체향인식은 물론이고 섭식까지 해결해주는 수유는 가장 확실한 각인 효과를 보여주는 행위이다.] 또한 현대에서도 피고용자인 베이비시터 아주머니에게 쩔쩔매는 부모들이 꽤 많은 것처럼,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돌봐주는 사람을 함부로 하긴 어렵기 때문에 유모를 고용한 부모도 다른 [[메이드]]들과 다르게 훨씬 후하게, 친척 아주머니 대하듯이 대해주었다. [[윈스턴 처칠]]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보다 유모 엘리자베스 에버레스트(Elizabeth Everest)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도쿠가와 이에미츠]][* [[에도 막부]]의 3대 쇼군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도 친어머니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단순히 사이가 안 좋은 수준이 아니라 친어머니 때문에 [[여성혐오증]]까지 생겼다고 한다. 특히 신분이 높은 여성을 싫어했고 그로 인해 정실부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다. 때문에 유모 [[카스가노츠보네]]와 이모 조코인이 이에미츠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의 눈에 들 측실감을 찾아다녔다고.] 유모 [[카스가노츠보네]]가 죽었을 때 친부모 때보다 더 슬퍼했다고 한다. [[조선]]의 제10대 국왕 [[연산군]]이 제일 사랑한 사람도 유모였다고 한다. 왕이 되자마자 자신의 유모를 봉보부인으로 삼은 것은 물론 유모의 8촌까지 면천시키고 죽은 그녀의 남편에게는 벼슬도 주었다. 이 일로 대간과 갈등까지 빚었을 정도.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 입장에서 유모는 '때로 친부모보다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내가 원하거나 내게 필요한 것을 마술처럼 뚝딱뚝딱 해 주는 믿음직한 존재'인데, [[뮤지컬]] 및 영화로 유명해진 '[[메리 포핀스(영화)|메리 포핀스]]'나 내니 맥피 시리즈는 판타지 요소를 결합해 '마술처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마법'''으로 해결해 주는 유모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쪽은 '젖어머니'라는 전통적 의미보다는 약간 현대화되어[* 작중 등장하는 아이들도 대부분 수유를 요하는 영유아보다는 적절한 훈육이 필요한 유아동들이다.] [[보모]] 내지는 [[가정교사]]라는 느낌이 더 강한 유모이지만. [[동아시아]]에서도 아이가 맨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 유모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유모의 상을 당하면 3달 동안 상복을 입어야 했다. 특히 왕실에서는 유모를 고르는 과정도 꼼꼼했고,[* 조건은 온화한 성격을 가지고(그래야 아기도 온화한 성격을 가질 것이라 여겼다.) 몸매와 젖의 색깔 또한 합격점에 들어야 했다.] 수유 기간에 지켜야 할 것도 많았다.[* 맵거나 짠 음식을 먹지 말고 덥거나 추운곳에 있지 말고 술 마시지 말고 [[성관계|합궁]]하지 말 것 등등.] 또 현대에 기껏해야 1~2년 젖을 먹는 것과 달리 과거 왕실에서는 적어도 4살, 길게는 7살까지도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이러니 유모의 존재감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왕의 유모는 봉보부인이라고 하여 세자의 딸들보다도 높은 품계인 종1품에 봉해졌으며[* 단, 종1품은 성종 때의 일이며 세종대왕 때 종2품에 봉한 게 최초.] 녹봉 역시 정승보다도 후하게 받았다. 품계 외에도 왕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보니 일가친척이 덩달아 면천되거나, 벼슬을 받을 수도 있었고 사고를 쳐도 많이 봐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유모가 되는 순간 신분상승 내지는 인생역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었다. 성종의 유모가 성종에게 대놓고 청탁을 넣었을 때 성종은 그냥 크게 꾸짖고 끝냈고, 연산은 유모가 궁중의 물건을 훔치다 걸렸는데도 그냥 내쫓았다가 결국 다시 불러들였다. [[왕비]]의 경우에도 왕비의 유모가 같이 입궁해 본방상궁이라 하여 왕비의 심복이 되곤 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같은 유모가 기른 아이들은 혈통상 연관이 없어도 형제자매로 여긴다고 한다. 따라서 실제로 친척 관계인 사촌 남매 간에는 결혼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나, 오히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라도 같은 유모의 젖을 먹은 적 있을 경우 결혼할 수 없으며, 마치 근친혼처럼 여겨진다. 유모들도 대부분 자신이 돌보는 아이에게 진정으로 애정을 보이고 아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정이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 유모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주인집 자손을 모시고 탈출하는' 이야기가 하나쯤은 전해내려오는 이유. 물론 친부모 중에도 [[막장 부모]]가 있듯, 유모라고 전부 자애로운 건 아니었다. 이전부터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전근대에 들면서 간혹 유모란 이름으로 자기가 양육해야 할 피보호자를 오히려 자기 입맛에 맞춰 통제하기 위해 혹은 재미로 [[가스라이팅]]하거나 악의를 푸는 화풀이 대상이나 자기 우월감을 채우기 위한 존재로 보고 학대, 심지어는 살해(!)하는 막장들의 존재가 더욱 부각되어 이 사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