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목 (문단 편집) === 혈통에 대한 집착 === 위의 민족적 개념과 다소 모순되어 보이지만, 오히려 혈통 자체에 대한 집착은 농경민보다 더욱 강하다. 부족 단위로 결속을 나타내고, 법률이나 규칙을 따로 글을 통해 남기는 경우가 적다 보니, 그 부족 내에서 정통성과 권위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혈통 자체였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농경민들은 한 지역에 대대로 살아오는 경우가 많고 유목민에 비해서 물자가 풍부한 만큼 학문에도 투자하여 혈연 외에 지연, 학연도 자연스레 발생한다. 하지만 유목민은 떠돌아 다니는 만큼, 애초 지연은 형성될 여지도 없고 문화적, 학문적 수준이 사는 환경상 발전이 쉽지 않으니 학연도 형성되기 어렵다[* 물론 어느 정도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가령, [[북아프리카]] 유목민인 [[베르베르|베르베르족]]은 자기들 영토에서 멀지않은 곳에 [[모로코]]나 [[이집트]], [[말리 제국]] 같은 학문이 융성했던 나라들이 널려있어서, 추장이나 대상인의 자제들이 이들 국가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이슬람]] [[신학]]을 익혔고, 이를 통해 대학 시절부터 형성된 신학 학파별로 똘똘 뭉치기도 했다. 또, [[보어인]]은 본래 정주 농경민이었던 [[네덜란드인]] 이민자들이 [[아프리카|타 대륙]]으로 이민하여 유목민화가 된 경우라서, 일부 정주민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이나 [[케이프타운]]같은 도시 거주자에 한해 [[네덜란드]] 본국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결국 남은 건 혈연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치(몽골 제국)|주치]]가 [[칭기즈 칸]]의 [[장남]]이었음에도 다음 대칸의 서열경쟁에 끼지도 못했다. 칭기즈칸 생존 당시부터 주치는 칭기즈 칸의 생물학적인 친아들이 아니라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치]]는 [[칭기스 칸]]의 정실부인인 [[보르테]]가 [[메르키트|메르키트족]]에게 납치당한 뒤에 낳게된 아이였다. 이런 가슴아픈 [[출생의 비밀]]이 있던 지라, 칭기스 칸은 자기 [[대인배|친아들도 아닌 주치를 자기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아들바보|죽을 때까지 사랑으로 대했다]].]. 물론 칭기즈칸은 공식적으로 주치를 자신의 첫째 아들로 인정했고 봉토 역시 수여했다. 어쨌거나 이러한 혈통주의로 인해 [[몽골 제국]]의 후계국들은 [[칭기스 칸]]의 직계자손들인 [[황금씨족]]이 아니면 [[칸]]을 칭할 수도 없어서, [[무굴 제국]]의 건국자인 [[바부르]]는 한동안 칸이 아니라 [[몽골어]]로 [[부마]]를 뜻하는 귀르겐을 칭해야했고, [[에센 타이시]]는 이런 불문율을 무시하고 칸을 칭했다가 사방팔방에서 일어나는 반란에 시달리다가 부하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슬람]]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라진 이유도 실은 여기에 있다. [[이슬람 제국|이슬람 공동체]]를 이끌던 [[무함마드]]가 죽자, [[아부 바크르]]를 포함한 공동체의 원로들은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무함마드의 혈족이 아니면 어떠냐, 지도자 노릇만 잘하면 그만이지]]하는 생각으로 [[정통 칼리파 시대|아무나 적합한 인물을 선출했으나]], 적지않은 수의 신자들이 무함마드의 혈족이 지도자인 [[칼리파]]의 지위를 세습해야한다고 주장해서 충돌을 빚은 것이, 교세가 두 개로 쪼개지는 내분으로 번진 것이다. 유목민인 [[베두인]]이 대부분인 당대 [[무슬림]]들의 관점에서는, 무함마드의 핏줄이 아닌 사람이 칼리파를 칭하는 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도 [[보어인]]이 반농반목의 유목민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보어인들은 이미 이 시기에는 정주민이 다 됐기는 했지만, 같은 보어인끼리도 초기 정착민의 후예인지 아닌지로 명문가 여부를 따져댔는데[* [[보어인]] 출신으로서 [[아파르트헤이트]]의 폐지를 위해 투쟁하다 옥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인 브람 피스허르가 명문가문인 피스허르 가문 출신이었다.], 이것을 통해 보어인 사이에서도 암묵적인 차별을 벌이는 사실상의 신분제 사회가 구축되어있었다. 이런 혈통주의적 경향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 이후로,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한 보어인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몰락해서 빈민층이 되거나 타국으로 이민하면서 사라졌다[* 허나 [[보어인]]도 유목민이었던 시절에는 현지의 [[코이산족|코이산계]], [[반투족|반투계]] 혈통은 물론, 나중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한 [[말레이인|말레이계]] 혈통과도 상당한 수준으로 혼혈을 이루었다. 그래서 [[체질인류학|형질인류학적]] 측면에서는 코이산족에게서 보이는 째진 눈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는 등, 조상 민족인 [[네덜란드인|네덜란드계]] [[백인]]과는 외양이 다소 다른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