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목 (문단 편집) === 문자 === 부족 규모의 공동체 특성 때문에 유목민들의 대다수는 [[문자]]를 발명하거나, 기록의 역사를 남기지 못한 편이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유목민들이 사료를 남기지 않은 관계로 세계사를 다룰 때 그들이 유라시아 대륙에 끼친 영향에 비해 비중있게 다뤄지지 못한다고 이야기 한다. 오늘날 다뤄지는 유목민의 기록들은 대부분 중국과 이슬람 같은 피정복자에 의한 사료뿐이다. 그렇지만 이도 유목민 나름이라서 [[원조비사]] 같은 기록을 남긴 [[몽골인]][* 다만 현대 [[몽골]]에서는 [[몽골 문자]]는 실생활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데, 1930년대 초중반에 몽골의 독재자였던 [[허를러깅 처이발상]]의 문자개혁으로 인해, [[키릴 문자]]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골 문자는 [[중국]]령인 [[내몽골 자치구]]에서 훨씬 더 많이 쓰인다. 애초에 [[컴퓨터]]나 [[스마트폰]], [[타자기]] 등으로 문서 타이핑을 하려면 대부분의 문자들이 [[가로쓰기]]를 하는 것에 맞춰서 가로쓰기만 지원이 되는데, 이 때문에 [[세로쓰기]]를 하는 몽골 문자는 이 점에서 심히 불리했던 탓에 20세기 이후로는 [[몽골인]]들도 잘 쓰지않게 되었다.]이나 [[거란]], [[서하]], --[[여진족]]--, [[돌궐]], --[[만주족]]--, [[티베트]]처럼 국가체제가 갖춰진 이후에 문자를 만든 유목민들은 많았고[* 엄밀히 말해 여진, 만주족 등 퉁구스계 제족들이 일부 반유목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유목민은 아니다.], [[헝가리인]]이나 [[베두인]]처럼 진작에 문자를 가지고 있었던 유목민도 있었다. 물론, 이것들도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문자를 받아들인 거고, 유목민들이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 쓰는 경우는 있어봤자, [[베르베르인|베르베르족]]이나 [[돌궐|돌궐족]] 정도밖에 없었다. 그 이외에 [[가우초]]나 [[보어인]], [[카자크]]의 경우처럼 정주 농경민이 모종의 이유로 유목민이 되었다면, 농경 생활을 하던 시절에 쓰던 문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