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목 (문단 편집) == 고된 유목생활 == >'''"용사는 화살 한 발에, 부자는 한파 한 번에 끝장난다."''' >---- > [[몽골]] 속담 로망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절대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유목 생활은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고되다는 것이다'''.[[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9159|#]] 애초부터 유목을 하는 지역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이 되면 그 소중한 가축들이 얼어죽거나 굶어죽는 일이 빈발하다. 몽골에서는 이런 한파를 조드(Zud)라고 부른다. 기온만 떨어지는 블랙 조드는 그래도 피해가 크지 않지만, 눈이 목초지를 덮어버리는 화이트 조드 때는 유목민 재산 1호인 가축들이 고스란히 굶어죽거나 얼어죽고 병들어 죽어 유목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대기근을 겪는다. 물론 농경 역시도 한파 앞에 무력한 건 똑같지만, '''농사는 최악의 경우라도 1년 수입이[* 물론 과수원을 한다던가 하는 예외도 있지만, 가장 통상적인 벼농사/밀농사의 경우로 한정해서.] 날아가는 반면, 유목민은 '평생 축적한 재산'{{{-2 (=가축 떼)}}}이 한 방에 날아간다.''' 유목 생활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는 과거의 영화를 자랑한 [[몽골]]이 현대에도 나름 거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300만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방증한다. 사실 영토만 클 뿐, 농경민족이 이미 금싸라기 땅을 차지한 상황에서, 그들은 변방의 사람이 살기 힘든 땅에서 활보한 것일 뿐이며, 인구 수와 문화 면에서는 상대가 안 되었다. 일례로 몽골은 아시아와 유럽 등을 정복할 때 많은 문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했다. 이는 당시 몽골을 비롯한 유목 민족의 문화 수준이 꽤 뒤떨어짐을 방증하는 셈이였다. 물론 이는 약간 편견도 있는데, 초원길은 주요 무역 루트였고 유목 민족들의 주변에 [[이란]]이나 [[중국]]처럼 부유한 농경 제국들이 존재하여 이를 기반삼아 대상들을 털며 도적질하며 살아가던 유목민들도 있어서, 생각보다 부유한 유목민들도 존재했다. 유목민들의 생산력은 낮아도 이게 자산을 털어버리는 짓거리[* 마피아나 마약상 등을 조사하면 그들 자신의 생산력은 낮아도 남의 자산을 강탈하여 부유한 경우가 분명 존재한다. [[스페인]] 등의 [[식민제국]]도 남의 자산을 털어 본래 가진 생산력보다 훨씬 부유한 국가를 만들었던 역사가 있다.]라, 유목민족들의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유목민들 무장이 생각보다 중무장인 것도 고증이 잘못된 것이 아닌데 중기병은 주 생업 중 하나인 [[약탈]]을 위해서 필수적이였다. --약한 자가 살아남기 힘들 뿐이다.-- 가령, [[리틀 빅혼 전투]] 당시에 [[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던 [[수족]]은, 전투 당시에 전사들 대부분이 미군에서조차도 예산 문제로 별로 보급되지못했던 [[헨리 소총]]같은 [[레버액션 소총]]으로 대거 무장하고 있었는데[* 당시로선 최첨단 무기였다. 현대로 치면, 일개 부족이 XM뭐시기 저기시기니 [[ACR]]이니 하는 서방권 국가들이 제식소총으로 채용하니 마니하는 단계인 최첨단 차기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던 셈이다. 이전에는 M16이라 되어 있었는데 리틀 빅혼 전투가 남북전쟁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1876년이고, 헨리 소총은 1862년에 초기 양산에 들어가 남북전쟁 내내 연방 정부 지급으론 2천정도 못 뽑았고, 여유 있는 북군 장교, 병사들이 사비로 구입한것 다 합쳐도 1만정도 못 찍었을 만큼 고가의 최신 무기였던만큼 원래부터 경제적이고 대량으로 풀렸던 M16과의 비교도 적절치 못하다.], 미군과의 무력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부족 단위로 인근의 [[미국인]] 총포상들로부터 대거 사들여서 쟁여놓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무장을 튼튼하게 한 것과는 별개로 가끔씩은 주변 농경민들을 털어먹기가 곤란해져서 경제난에 시달리게 되면, 궁여지책으로 같은 유목민들끼리 강도질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세계 각국의 해군들의 토벌을 받아서 세가 약해지자, 자기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조직을 털어버리기도 하는 것과도 같다. 주로 많은 수의 가축을 키우는 대규모 목장주나 타 부족, 타 국가를 상대로 무역하러가던 상단들이 표적이 되곤 했다. 이런 문제때문에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도둑이나 강도를 발견하면 사로잡지않고 그냥 죽여버리는게 [[암묵의 룰]]로 여겨졌다[* [[칭기스칸]]이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의형제]]였던 [[자무카]]와 사이가 틀어진 이유도 이것이다. 자무카의 남동생인 자이차르가 형 몰래 칭기스칸의 부족이 키우던 가축을 도둑질하려다가 현장에서 사살되었는데, 이에 분노한 자무카가 친구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이 일화는 절친한 친구의 동생이라도 가차없이 죽여버릴 정도로, 유목민들 사이에서 [[절도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슬람]]의 율법서인 [[샤리아]]에서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손목을 자른다'는 다소 과격한 조항이 들어가있는 것도 유목민인 [[베두인]]의 풍습이 반영된 결과다. [[카우보이]]나 [[가우초]], [[코만치|코만치족]] 등의 [[아메리카]] 유목민들은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권총]]을 선호했는데, 인근의 [[미국인]]이나 [[메스티소]], [[아메리카 원주민]]계 정주민들의 마을이나 도시에서 물건을 거래하거나 임시로 숙박할 때를 위해 평상시에는 허리에 차서 숨겨놓다가, 인근 원주민 부족이나 갱단이 습격해오면 바로 반격하기 좋도록 일종의 [[데린저]] 개념으로 사용했다[* [[서부극]]에서 나오는 총잡이들이 순식간에 주머니에 있던 [[권총]]을 뽑아서 발사했다가, 잽싸게 도로 넣는 동작이 결코 폼잡느라고 그런 게 아니다. 그 정도의 순발력이 없으면 인근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나 갱단, (본인이 범죄자일 경우)현상금 사냥꾼들에게 맥없이 사살당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다들 습득했던 기술이었다.]. 물론 이는 반대로 본인들이 이웃 마을이나 부족들을 습격할 때도 유용하게 쓰였다. [[미국]]의 중서부나 [[아르헨티나]] 내륙 지방은 거의 다 척박한 [[사막]]이나 [[초원]] 지대라서 사람이 살기에는 무척 열악한 자연환경이었는데, 때문에 걸핏하면 가축을 먹일 목초지를 확보하거나 옆 마을이나 도시를 약탈해서라도 부족한 식량과 자금을 조달하고자 여러 부족이나 갱스터들이 총질을 벌이고 강도짓을 하는 무법지대가 되곤 했다[* [[서부극]]에서 허구헌 날 서로에게 배신을 일삼거나, 자주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 건, 이 시기의 사회상을 고증한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약탈 행위는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들이 [[중국]]을 차지하고도, 오히려 중국의 문화에 휩쓸렸거나, [[아메리카]] 유목민들이 수시로 각국 정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토벌당하고 약체화가 되어버린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다. 농경민족의 경우, [[예방전쟁|외적의 침입을 미연에 방지하고 산이나 강을 경계로 한 방어선을 확립할 목적이나]] 군주의 정복욕때문에 대외정벌을 한 경우가 큰 데 비해, 유목민족은 정말 살기 위해 농경민족을 약탈하려는 목적으로 침략한 것이기에 [[전투력]]이 그렇게 높은 것이다. 물론, 상술한 연유로 인해, 농경민족에 비해서도 외세와의 군사적 충돌이 잦았던 것도 사실이라서, 적지않은 유목민들이 상대적으로 충돌이 적어 안정된 편인 정주민이 되곤 했다. [[북아메리카]]의 유목민인 [[코만치|코만치족]]은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시로 인근의 [[백인]] 마을이나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을 습격해서 약탈을 일삼았다. 때문에 [[서부극]]에서 이들이 백인 여자들을 납치하는 묘사가 제법 나온 것이고, 이들 부족명도 친척뻘 민족인 [[우트족]]의 언어로 '적(enemy)'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이후로는 [[미국]]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고자, 대부분의 북아메리카 유목민들과 마찬가지로 정주민으로 전환했다. [[몽골인]]들도 [[둥샹족]]같은 일부 분파는 [[몽골 제국]]이 세워지면서 평화를 누리게 되자, 한 곳에 정착해서 정주농경민이 되기도 했으며, 본래 유목민이었던 [[헝가리인]]들도 9세기 이후로는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정주 농경민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