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성환 (문단 편집) == 생애 == 1931년 8월 20일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에서 태어났다. [[성주고등학교|성주공립농업중학교]] 졸업 후 1952년 [[영남대학교|대구대학]] 법정대학에 입학했다. 대구대학 4학년 때 [[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 "대학 측이 수업료를 연체하는 학생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투쟁을 벌이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영남대학교]] 대학본부 측에서 당초 학칙에 있었던 '퇴학당한 사람은 퇴학당한지 10년이 지나면 복학할 수 없다'는 조항을 개정하면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3102000329123010&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0-20&officeId=00032&pageNo=23&printNo=14894&publishType=00010|1993년 9월 복학할 수 있었고]], 재학 시절 취득하지 못한 4학점을 취득하여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021500239121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4-02-15&officeId=00023&pageNo=21&printNo=22603&publishType=00010|1994년 2월 22일 졸업했다]]. 이후 1999년 [[고려대학교 대학원|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북한학|북한및지역연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구대학에서 퇴학당한 뒤 [[주병환]] 당시 [[제4대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서 정계에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6101700239102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6-10-17&officeId=00023&pageNo=2&printNo=20166&publishType=00010|입문했으며]], 한때 [[민주혁신당]] 창당에 관여하기도 했다. 민주혁신당이 해체된 뒤에는 [[사회대중당]]에 입당했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출범 후인 [[1960년 지방선거]]에서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상북도 도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김영삼]], [[박준규(1925)|박준규]] 등 [[신민당(1960년)|신민당]] 국회의원들과 청조회에 속하여 신풍 운동을 주도하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속하여 [[3선 개헌]] 운동 등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비판하는 민주화운동을 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여 친야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같은 친야 무소속 [[김현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한 김영삼, [[이민우(1915)|이민우]], [[김동영(정치인)|김동영]] 등과 민주산악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파일:/image/358/2012/10/09/160154810_6563.jpg]]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중구(대구광역시)|중구]]-[[서구(대구광역시)|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이만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시 이만섭 후보는 자신이 싫으면 고생하는 유성환 후보를 찍어 달라고 했다가 정작 자신은 [[민주정의당]] [[한병채]] 후보를 간신히 누르고 2등 당선되었다고 회고하였다. 1986년 [[대한민국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신영]] [[국무총리]]에게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남북통일|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가 국회의원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에 의해 잠시 구속되었다.[* 참고로 이 통일국시론을 대필한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7회 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로 나온 [[임대윤]] 전 동구청장이다.] 이것이 [[유성환 국시론 파동]].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통일민주당 중앙청년위원장을 맡아서 활동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서구 을(대구)|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최운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였고,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당선권에 들지 못했다가, 1993년 [[김영수(1942)|김영수]]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사임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 선거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박준규(1925)|박준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국민신당(대한민국)|국민신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신당 후보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문희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국민신당이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되자 새정치국민회의에 속하였다. 이후 [[열린우리당]] 특임행정위원 겸 특임고문과 [[대통합민주신당]] 특임고문을 역임하면서 민주당계 정당에서 원로 역할을 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독소조항 개정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12년]] 대선때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177&page=3&total=72|유성환 ˝수십년 투쟁해 얻은 자유민주주의에서 한마음이었다˝]]] 유 전 의원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종북세력들의 주장은 희생된 군인들의 영혼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유족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엄청난 상처를 입힌 것"이라고도 개탄했다. 그는 [[문재인]] 후보의 '남북경제연합'에 대해서도 "아직 대통령이 되지도 않은 사람이 너무 앞서가는 발언을 하면 오히려 남북 관계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 전 의원은 그러면서도 "우리가 문 후보 측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다고 보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만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자 하는 그 농도에서 박 후보가 더 짙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민주동지회 기자회견과 관련, '정말로 YS가 박근혜를 지지하느냐'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데 대해선 "민주동지회 회장인 김봉조 전 의원과 김무성 선대위 본부장,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무려 세 사람이 '김 전 대통령이 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이런 세 사람의 말을 전제로 지지선언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 어떻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을 지지하느냐'고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일응 일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박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과거사에 대해서도 나름 사과를 했다"며 "박 후보의 지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 등을 고려할 때 박 후보가 집권해도 민주주의에 어떤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도 말했다. 2018년 7월 24일 [[대구광역시]] [[동구(대구광역시)|동구]] [[신암동]] [[대구파티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