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승민(탁구) (문단 편집) === [[2004년]] === 그렇게 여전히 중국의 벽을 실감하며 세계랭킹 5위권을 맴돌다 이집트 오픈 등에서 우승하며 세계랭킹 3위까지 차지했다.[* 이 세계랭킹 3위는 김택수가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고 오른 걸 제외하면 한국선수 중 찍어본 적이 없는 랭킹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001/2004/08/24/kp1_2040823w3389.jpg|width=100%]]}}} ||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 결승에서 당시 세계랭킹 4위였던 [[왕하오]]를 세트 스코어 4-2로 꺾어,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유남규]], [[양영자]], [[현정화]] 이후로 16년 만에 [[https://youtu.be/SE0R-r8EeoE|금메달]]을 차지했다.[* 21세기 올림픽 '''유일무이한 비(非)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이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래도 유일무이 단식이나 최초 타이틀은 유지된다.][* 이때의 금메달로 중국에서 열린 중국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 대회에 세계 올스타 선수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주니어 시절 2승을 해본 이후 성인이 되고 나서 상대전적 6전 6패에, 중국식 이면타법을 완벽하게 받아들여 서브와 포핸드 vs 포핸드의 드라이브 맞대결 이외 모든 기술은 유승민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았던 왕하오를 압도했고, 아테네올림픽 모든 경기 중 가장 큰 업셋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충격을 중국 전역에 선포하며 금메달을 당당하게 목에 걸었다. 1세트 왕하오가 긴장한 탓에 스트레이트 백드라이브를 미스한 것을 재빠르게 캐치하고 리시브 커트를 집요하게 왕하오의 백사이드로 준 뒤 포핸드 랠리를 유도해내 힘으로 압살하는 전략이 주효했으며, 왕하오는 해당 경기 이후 2주간 제대로 잠도 잘 수 없었을 정도로 분해했다고 한다. 이 금메달로 세계 랭킹도 2위로 올라섰고, 이후로 한국 남자선수 중 유승민 랭킹에 근접한 선수는 없다. 비슷한 세대인 [[오상은]]과 [[주세혁]][* 비슷한 세대라곤 하지만 둘 다 유승민 보다 나이가 많다.]이 최고랭킹 5위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후 중국 탁구가 2008, 2012, 2016 올림픽에서 메달을 싹쓸이하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남녀 개인 단식에서 금은동을 중국이 모두 석권하고, 남녀 모두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2012, 2016 올림픽에서도 남녀 개인단식에서 금메달, 은메달을 석권한 데다 단체전까지 남녀 모두 금메달을 땄다. 2012년부터 단식 선수로는 2명까지만 출전하게끔 규정이 바뀐 것을 고려하면 그냥 중국이 다 해먹는다고 보면 된다.] 넘사벽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2004년의 이 금메달은 한국 탁구가 보여준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사족으로 1999 주니어 아시아선수권 이후 유승민과 왕하오의 당시 통산전적은 시니어 기준으로 0승 6패인 절대적인 열세였고, 금메달을 딴 아테네 올림픽 이후에는 다시 기량이 뒤처져 '''왕하오에게 전패해 통상 11전 전패''', 결국 은퇴 전까지 최종 전적은 2승 18패로 절대적인 열세였다. 그 '''2승 중 1승이 결정적인 올림픽 결승에서 나왔다.''' 그야말로 '''[[금메달|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려준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나게 하는 셈. 결승전 당시 유승민의 컨디션이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 유승민은 같은 모델을 사용했음에도 굳이 코치였던 김택수를 졸라 그의 라켓을 빌려들고 올림픽에 임했다. 또한 준결승이 끝나고 나서부터 '''유승민은 자신이 결승에서 승리할 것임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준결승이 끝난 직후 호텔에서 김택수에게 전화를 걸어 앞뒤없이 결승전에서 자신이 이길 것임을 확신한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고 한다.] [[왕하오]]는 이후 은퇴하기 전까지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에서 '''3연속 은메달'''이라는 --[[콩라인|대기록]]-- 안타까운 결과를 받아들이며 현재는 은퇴했다. 다만 단체전까지 본다면 왕하오는 2008년 이후로 개인전 은메달 3번 단체전 금메달을 2번 딴것에 비해 유승민은 2004년 이후 개인전은 메달권에 들지 못했고, 단체전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 런던 올림픽에선 0-3으로 중국팀에게 패배해 단체전 은메달을 마지막으로 2014년에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