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아인 (문단 편집) === 글쓰기 활동 === 2006년부터 미니홈피 게시판에 본인이 쓴 글(시와 수필)을 게시했었다. 연기 이외에 글 쓰는 것으로 소통한 적이 많았다고 하는 등 꽤 애착을 가지고 있다. 2019년 인터뷰에서는 “글쓰기는 나의 표현 방식 중 하나고, 내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가까이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팬들이 작가나 시인으로 부른다. 실제로 ‘연기하는 유아인’에 반했다가 ‘글 쓰는 엄홍식’으로 출구 봉쇄된 팬들도 부지기수. 그러나 현재는 미니홈피 게시판이 닫혀서 글을 볼 수가 없다.[* 갤러리와 게시판이 모두 닫혔다. 하지만 2006년부터 2011년까지의 선곡 리스트는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미니홈피 시절 다수의 시와 수필을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엄홍식 작은집’ ‘유아인 작은집’으로 검색'''을 해보도록 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유아인의 글 모음은 대부분 미니홈피 활동 시절(2006년~2011년)의 글들이다. * 2009년 <야심만만2>에 출연하여 즉흥적으로 시를 쓴 후 낭독하기도 했다. 고화질 영상을 원한다면 [[http://tvcast.naver.com/v/677863|여기]]로. * 2016년 시 전문 월간지 <시(詩, see)> 1월호에서 유아인이 시를 즐겨 쓴다는 사실을 특집기사로 실었다. 여기서 편집자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배우의 일상과는 전혀 무관한 자아를 찾아가는 그 아름답고도 맑고 깨끗한 가벼운 호흡이 느껴져 읽는 내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해당 월간지에 실린 유아인의 2개의 시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f9e0109c9bf09810d10418dc216e73f709dc2258d404e455e282b66d7d0e4e37.jpg|width=100%]]}}}|| * 20대 초반에 썼던 수필 ‘편의점이 폐업했다’는 넷상에서 자주 공유된다. 또한 이 수필을 한 블로거가 [[http://purpledoll3.blog.me/90100460039|만화로 그린 것]]이 있다. * 초등학교 6학년 때 썼다는 시가 커뮤니티에 공개되기도 했다. 학교 문집에 실려 있다고 한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s32.postimg.org/proxy.jpg|width=100%]]}}}|| 사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트위터의 멘션들이 더 많이 화제가 된 편이다. 유아인은 2015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 “트위터 글은 특히 모나게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아인은 <씨네21>에 영화 《[[클로저]]》 감상문이나 잡지 <인스타일>과 <무비위크> 등에 본인의 에세이를 기고한 적이 있다. 특히 2012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Dazed&Confused)>에 6개월간 칼럼을 기고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게시되는 「공짜, 엄마」, 「인디라는 껍질」, 「어제, 오늘」 등의 칼럼은 이 시기에 쓴 글이다. >음악가의 본질은 음악에 있고, 배우의 본질은 연기와 작품이며, 작품은 곧 작가와 감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지 않는 한 충분히 창조적인 채로 어디에라도 존재할 수 있다. 미디어의 순기능을 적절히 이용하고 본질을 잃지 않는 영민한 아티스트의 출현은 지극히 반길만한 일이다. 인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대중은 보다 유연해졌다. 만일 우리의 기대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하는 판자촌의 영웅을 향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인디는 없다. >----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 2012년 12월호 「인디라는 껍질」 중에서 >내 친구의 외상 장부에 내게 얼마짜리 밥을 몇 번 샀는지 따위의 기록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준 생일 선물이 숫자로 환산되어 응당한 대가로 돌아오지 않아도 서운치 않았으면 좋겠고, 지인의 결혼식에 낸 축의금의 숫자가 내 마음의 크기를 대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나 내가 낸 10만원짜리 봉투가 마이너스로 돌아오더라도 괘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친과 사별한 또 다른 친구가 장례식에 오지 않은 지인들을 일일이 데스 노트에 적으며 자신이 그들에게 준 것들을 세고는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게 반쯤 얹혀사는 친구가 그 어떤 부채 의식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친구는 10평 오피스텔로부터 도망갔던 투룸 집 안방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 절실한 동지애 이상의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어수룩한 낭만을 품는다. >----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 2013년 2월호 「공짜, 엄마」 중에서 글을 자주 쓸 뿐만 아니라 시를 자주 읽으며, SNS를 통해 종종 본인이 읽은 시집을 추천한다. 본인의 서른 살 생일에는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 수록된 「청춘」을 올렸고,[* 나중에 이 사실이 <비밀독서단>에 소개되기도 했다.]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선물받아 읽었음을 인증한 적도 있다. 2011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시를 읽으면서 무엇을 얻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일 수도 있다. 시는 짧은 글이고, 그래서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짧은 텍스트 안에서 소설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텍스트를 읽어내고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이라는 게 연기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을 준다.” 2014년 이후에는 브랜드 잡지 <톰 페이퍼(Tom Paper)>의 편집장으로서 쓴 인트로(intro)와 스튜디오 콘크리트 대표로서 쓴 전시회의 서문 등을 통해 유아인의 글들을 읽을 수 있다. 2017년에는 모델 [[장윤주]]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와 4시간 동안 대화한 뒤 인터뷰어로서 잡지 <보그>에 글을 싣기도 했다. 2019년에는 미술 월간지 <아트 인 컬처>의 창간 20주년 기획 기사에 참여했다. 큐레이터, 작가, 컬렉터 등 미술 관련인 20명이 참여한 특집이라 그의 글은 ‘배우 유아인’이 아니라 ‘스튜디오 콘크리트 엄홍식 대표’의 이름으로 올라갔다.[[https://facebook.com/artinculture.kr/videos/856484564783743/|#]] 이렇다 보니 책을 내자는 구체적인 제안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출판사가 뽑은 [[http://imgnews.naver.net/image/020/2016/05/30/78387873.1_99_20160530030616.jpg|저자로 삼고 싶은 스타]]에 꼽히기도 했다. 2016년에는 [[배순탁]]과 김동영 작가가 유아인의 글에 대해 언급한 적도 있다. 유아인은 글에 욕심이 많지만(잡지 <인스타일> 2011년 BIFF 특별호) 이러한 제안들을 정중히 거절했다. 책을 내고 싶지만 개인적인 작업으로 처음 선을 보이고 싶고(주간지 <하이컷> 74호) ‘유아인이 했다’는 이유로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을 수 있다고(2013년 10월 ‘스포츠경향’ 인터뷰)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는 책을 낼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시집을 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2016년 팬들과 함께한 《좋아해줘》 상영 후 GV에서는 출간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에는 ‘콘크리트1111’ 프로젝트의 기획자로서 시와 일기 사이의 형태로 2020년에 출간할 것이라 말했다. 이것은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 중 하나인 ‘집단행위예술1111’의 일환으로, 출간 전 일부 글들은 ‘콘크리트1111’의 기획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