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염 (문단 편집) == 개요 == [[중국]]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로 [[자(이름)|자]]는 위석(威碩). [[예주]](豫州) [[노나라|노국(魯國)]] 사람으로 [[유비]]가 예주에 있을 무렵에 [[종사]]로 일했으며, 성이 같고 풍류가 있으면서 담론을 잘해 유비와 친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고서 고릉태수로 삼았다. [[유선(삼국지)|유선]]이 [[황제]]가 되자 도향후가 되었으며, 매번 [[이엄]]에 다음 가는 반열로 위장군, 중군사가 되었다. 이후 후장군을 역임하고 거기장군으로 승진했지만 국정에 참여하지 않고 [[제갈량]]을 따라 풍자하거나 건의할 뿐이었다. 매우 사치스런 생활을 했고 231년에 이엄을 탄핵하는 제갈량의 표문에 연명했으며, 232년에 전군사 [[위연]]과 불화한 일로 제갈량에게 질책을 당해 사죄하고 관위를 유지한 채 [[성도]]로 보내지는 처분을 받았다. 234년 정월에 유염의 [[처]] [[호씨]](胡氏)가 태후([[목황후]])에게 하례하러 갔고 [[태후]]는 특별히 명령을 내려 호씨를 머무르게 했다가 한 달을 넘겨서 내보냈다. 유염은 호씨가 [[미녀]]이므로 황제(유선)와 [[불륜|사통]]했으리라고 의심해 아랫사람들을 시켜 [[가정폭력|신발로 호씨의 얼굴을 때리고 쫓아냈으며]], 이 일로 인해 유염은 구금되었다가 기시[* 棄市.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죄인의 목을 베고 그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던 형벌이다.]되었다. 이로부터 [[삼국]]의 조정에서는 [[대신]]의 [[어머니]]나 [[아내]]가 경조[* 경축하는 것과 조문(弔問)하는 일이다.]하는 풍습이 사라지게 된다. 유비의 예주 시절부터 섬겼던 창업 신하로 고위직을 역임했지만 [[영 좋지 않은]] 최후 때문인지 [[정사 삼국지]] 촉서 유염전에 있는 그의 기록은 소략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