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우(삼국지) (문단 편집) === 초기 행적 === [[광무제]]의 장남 동해공왕 [[유강(동해공왕)|유강]](東海恭王 劉彊)[* 어머니가 광무제의 첫 황후인 곽씨였는데, 광렬황후에 대한 광무제의 총애가 깊어짐에 따라 사이가 소원해졌고 투기하여 폐위되었다. 유강은 생모의 폐위 이후에도 황태자의 자리에 있었으나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부황인 광무제에게 사퇴를 여러 차례 청한 이후에야 동해왕으로 봉해졌다. 광무제는 유강에게 아무런 과실이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여러가지로 우대하였고, 이는 이복동생이자 차기 황제인 명제 또한 마찬가지였다.]의 5대손이며[* 유우는 역시 황족 출신 조조의 참모 [[유엽]]과 먼 친척 뻘인데, 그의 조상은 광무제의 7남이자 폐후 곽씨의 소생이었던 부풍질왕 [[유연(후한)|유연]](劉延)이었다. 참고로 유우와 유엽은 12촌이며, 이 둘은 헌제와는 13촌 숙부 - 조카 사이이다(헌제 쪽이 조카). 그냥 황족일뿐 150여년 전에 같은 조상을 뒀을 뿐인 사실상 성씨만 같은 남과 다를바 없는 방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항렬상으로는 유우, 유비, 유엽, [[유표]], [[유장(삼국지)|유장]], [[영제(후한)|영제]] 모두 같다.] 할아버지 유가(劉嘉)는 광록훈을 지냈다. 아버지 유서(劉舒)와 유우는 이미 황제와 촌수가 멀었으므로 젊은 시절 현의 하급관리로 일했다. 하지만 유우는 청렴하고 학식이 빼어났으므로 군으로 불려와 군리가 되었고 군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효렴으로 천거되며 낭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승진을 거듭한 끝에 유주 자사에 이르렀는데 민정에 능하고 온후하고 사려가 깊었으며 명성과 지위에 의지해 자신을 높이지 않고 항상 겸손하며 검약한 태도를 지켰으므로 영내의 백성들은 물론 국경 밖의 여러 이민족들에게도 큰 신뢰를 얻었다. 이후 임기가 지나자 조정에서는 유우를 중앙으로 불러 상서령, 광록훈으로 거듭 임명했고, 황실의 종친으로서 예를 갖추었다고 하여 종정으로 바꿔 임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