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우(삼국지) (문단 편집) === 사후 === [[공공의 적|그러나 인의의 상징이었던 유우의 목을 벤 공손찬은 명실상부한 하북의 위험분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실제로 [[선우보]](鮮于輔), [[선우은]](鮮于銀), [[제주(삼국지)|제주]](齊周) 등 유우의 휘하 관리들이 공손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염유]](閻柔)를 오환사마로 추대, [[오환족]]과 연합하고 원소와 손을 잡았으며, 원소는 유우의 아들 [[유화(삼국지)|유화]](劉和)[* [[헌제]]의 명을 받고 유우에게 가다가 남양에서 [[원술]]에게 억류되어 공손찬의 살육에서 살아남았다. 노력 끝에 원술에게서 탈출하여 북쪽으로 갔으나, 이번엔 원소에게 억류되었다.]를 대장으로 내세워 선전공작에 이용해 공손찬은 민심을 잃고 비참하게 패망하였다. 원래 공손찬은 유우의 머리를 장안으로 보냈는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공손찬은 나중에 원소에게 패배해서 은신처였던 역경에 불을 질러 일가족과 분신 자살한다. 그런데 원소는 불에 탄 시체에서 그의 목을 베어 당시 후한의 수도이자 조조의 근거지였던 [[허창]]으로 보낸다. 결국 인과응보인 셈이다.] 백성들은 유우의 죽음을 슬퍼하였으며, [[손근(상산상)|손근]](孫瑾), 장일(張逸), [[장찬]](張瓚) 등 몇몇 관리들은 일부러 공손찬을 비난하고 자진해서 죽임을 당했다. 유우의 휘하 관리였던 [[미돈(후한)|미돈]]은 공손찬의 사자에게서 유우의 머리를 빼앗고 장사를 지내주었다. 그리고, 유우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일족 중 한 명인, 다름아닌 [[유비]]가 결국 공손찬으로부터 돌아서게 되었다. 훗날 공손찬과는 비교도 안되는 거물이 된 유비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이는 공손찬이 결국 원소에게 참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