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인석 (문단 편집) == 기타 == * 그는 을미년과 정미년 연호는 명의 연호를 사용했는데, 을미년의 경우 존양의 의리를 위해서 그랬고, 정미년의 경우 새 연호를 채택한 것이 개화당의 무리가 대명의 신방이 오랑캐의 반열을 쫓아가는 일이라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고종을 황제로 높인 뒤에도 '광무'란 연호를 쓰지 않고 순종의 연호 '융희'를 쓰지 않다가, 나라가 망한 뒤에는 융희란 연호를 사용했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람은 하루라도 임금이 없을 수 없고 또 삭발한 머리로 참람된 황제는 황제라고 할 수가 없어 아직 선왕. 선조의 황제로 칭한 제왕을 황제로 하여 천하의 참된 임금이 나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셨으니(중략) 내가 그 의리를 지킨다. (중략) > >우리나라는 중화가 되었다 할 수 있는데 우리 군왕을 왜국이나 서양 사람들이 칭하는 황제와 동등반열로 하므로 임금을 높이기 위해 황제라 칭하거나 연호를 안 썼다.(중략) 그러나 이제 강제로 합방되어 우리 황제 지위를 폄하하고 연호를 폐하므로 우리 임금 존숭의 뜻으로 썼다. >---- >'의암집' * 그가 우주문답에 써놓은 마땅한 세계 질서는 다음과 같다. 그는 중국을 '제왕'이 다스리는 것은 천지 개벽 이래 세워진 대일통의 규범이며, 중국이 외국을 '통할'하고 일국이 만국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바꿀 수 없는, 올바른 이치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라는 것이 하늘이 낙서(洛書)를 내려주어 구주(九疇)를 다스리게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백성들이 나라의 일을 의논하는 것은 천하에 도가 없기 때문이며,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국회를 구성하고 법을 의논하는 것은 도를 없애고 기강을 그르치는 것이라고 분명히 써놓았다. 그리고 가장 중국다운 것은 황제로서 대통을 세우고 공자로서 '종교'를 삼으며 오륜을 지키고 전통적인 의발을 준용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 유인석은 정치에서 두 가지를 가장 중요시 했는데, 법치를 하지 말고 '선정'을 베풀라는 것이었으며 '[[정전제|정전(井田)]]'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나라를 위해 도(道), 덕(德), 학(學), 정(政), 형(形), 문(文), 무(武)를 강조했다. 그는 삼강오상의 도를 근본으로 하여 육경과 사서를 강학하여 도덕을 이룰 수 있다고 했고 이로써 옛날의 이상적 통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면 나머지 일은 염려할 것이 없다고 했다. 유인석은 복고를 통해 강국이 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서 삼대의 학제를 회복하고 그것을 준수하는 것을 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