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인석 (문단 편집) == 그외 == 유인석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암살한 뒤 일제 형사들에게 취조를 받을 때 '의병 총대장'으로 거론한 김두성과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안중근은 김두성이 강원도 출신이며, 허위, 민긍호, 홍범도, 이범윤, 이은찬, 신돌석 등이 그의 휘하에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김두성의 직함이 ‘팔도총독’이며, 이는 전국의병의 총대장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은 김두성으로부터 ‘특파독립대장'에 임명되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유인석은 강원도 춘성군 출신이며, 당대의 거유(巨儒)였고, 13도의군 도총재로 추대되는 등 연해주 의병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만큼 그가 김두성일 가능성은 분명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또한 안중근은 일제의 심문을 받을 때 형사가 유인석과의 관계를 묻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유인석은 작년(1908년) 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다. 유는 그때 15세 가량의 남자를 데리고 있었다. 금일의 국가형세에 대해 선생의 가르침을 받겠다고 말했더니 ‘어떻게든 애국하여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을 뿐 많이는 말하지 않았다. 귀가 어둡고 눈이 약해 매우 노쇠하였다. 학자의 풍모로 다언(多言)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므로 그냥 떠났다. 노쇠한 그는 다만 일본인을 미워할 뿐이며 세계의 대세 동양의 백면(百面)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한국에 있는 일본인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뿐 결코 금일의 형세에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한인 중에는 본국에서 학자가 왔다 하여 모두 가서 여정을 위로하나 금일 동지에 있는 한인은 그와 같은 완고하고 시세에 어두운 사람과는 의사가 합치하지 않으며, 다만 노인이므로 경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시의 심문에 대한 안응칠의 공술(제2회)' 안중근은 여기서 유인석을 완고하고 시세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비판적으로 평했지만, 독립운동 방략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를 예방한 사실만큼은 밝혔다. 또한 그는 '유음석(劉陰錫)'의 제자인 이진룡을 찾아가 이토를 사살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고 진술했다. 여기서 유음석은 유인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안중근은 유인석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가명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직후, 이상설은 유인석에게 편지를 보내 피신을 권유했다. 이에 유인석은 거주지를 옮겨 이종루(李鍾壘)의 집에서 유거하면서 다음과 같은 답신을 이상설에게 보냈다. 대감이 매우 근심해 주어 지극히 감동될 뿐이다. 대저 왜놈들이 후간(候簡)을 보내 정탐하는 데 이르게 되면 정세는 혹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등박문(伊購博文)을 죽인 것은 내가 그 계획을 아는 것이 아니지만 억지로 나로부터 했다고 한다면 혹 되겠는가. 대체로 인석이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이석대(이진룡의 이명) 역시 오지 않았을 것이며, 이석대가 오지 않았으면 안응(安應)도 형세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혹 나로부터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와 이석대를 여기에 오게 한 것은 이등박문(伊購博文)의 소행이다. 그 놈이 죽은 것은 그 자신으로부터이지 어찌 다른 사람으로부터이겠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