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제품 (문단 편집) == 역사 == 뭐니뭐니해도 유제품의 본좌는 유목민들이었다. 거의 모든 식단이 가축의 부산물로 이루어졌으니 가축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젖 또한 자연스럽게 식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젖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이를 보존할 방법을 물색하던 중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 오늘날 내려오는 유제품의 시초가 되었다. 현재도 몽골을 포함한 여러 유목민족의 전통이 있는 국가에 가 보면 젖으로 만든 다양한 종류의 유제품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유목민들에게서 비롯된 유제품을 먹기 좋게 개량한 공로는 농경민족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유목민들이 유제품을 만든 이유는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해 식량인 젖을 장기보존하기 위한 방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맛까지 좋게 개량하기는 어려웠던 반면, 농경민들에게 유제품은 사치품에 가까웠기 때문에 도리어 맛의 향상을 위해 개량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치즈의 경우 이미 로마 시대에부터 다양한 종류와 전문적인 제조가들이 존재했을 정도였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내려와 유럽에는 온갖 종류의 치즈가 인기를 끌며 판매되고 있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를 통해 일본에 유제품이 전해졌다는 것을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삼국 시대부터 우유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대 이전까지는 정말 희귀한 식품으로 취급되었다. 전문적으로 우유만 짜는 [[젖소]]가 없었고, 소 자체가 귀해서 대부분 농사용이었던 시절에 우유를 구하기는 몹시 어려웠기 때문에 임금님 수라상에나 오를 수 있는 정도였다. 우유로 만든 죽인 [[타락죽]]이 왕의 조반으로 오르곤 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한국 요리|한식]] 중 전통 요리에는 유제품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따라서 한식 중 유제품을 쓴다면 현대에 새로 개발한 '모던 한식'일 가능성이 크다. 교리상 채식을 하는 한국불교 역시도 교리자체는 유제품을 허용하는 락토단계의 채식이지만 현대 이전까지 낙농업이 거의 발달하지 않아 유제품을 구할수 없었으므로 사실상 [[사찰요리]]는 쭉 비건의 형태로 발달했다. 현대에 와서 유제품을 접하기 쉬워지면서 급속하게 유제품을 활용한 사찰요리가 늘어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