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진(고려) (문단 편집) == 생애 == [[태조(고려)|태조]] 왕후인 [[신명순성왕후]]를 배출한 충주 유씨 가문으로 [[광종(고려)|광종]] 말에 처음 내승지 벼슬에 올랐다. [[외척]] 가문 출신이라 우대를 받았기 때문인지 고위 관직에 나가려면 필수로 거쳐야 하는 외직에 임명된 적은 없으며, [[목종(고려)|목종]] 때 승진을 거듭해 이부상서 [[참지정사]]가 됐다. 목종 12년(1009) 1월 목종이 죽자 [[최항(972)|최항]], [[채충순]] 등 다른 재추들과 은대(銀臺)에서 숙직하며 만일에 대비했고, [[현종(고려)|현종]]이 즉위한 뒤 3월에 [[상서좌복야]]에 올랐다. 이후 [[평장사|내사시랑평장사]](1011), 문하시랑평장사(1012)를 거쳐 현종 5년(1014) 검교태사 [[문하시중|수문하시중]]으로 승진했다. 현종이 집권한 동안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났는데, 문하시중 유진이 현종 9년(1018) 왕에게 조언을 한 기록이 있다. 백성들이 전염병에 걸리고 날씨가 이상한 것은 형벌을 잘못 다스렸기 때문이라며 유진은 법률 가운데 「월령(月令)」과 「옥관령(獄官令)」을 인용했다. 유진은 두 법률을 근거로 형정(刑政)을 시기에 맞게 다스려야 한다며 내외의 관청에서 월령에 의거해 시행할 것을 주장했고, 현종은 유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현종 10년(1019) 8월 21일에 죽으니 3일 동안 조회를 멈춰 애도했고 [[내사령]]에 추증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