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홍준 (문단 편집) == 기타 == * 2003년 국립중앙박물관장 내정설이 떠돌자 학계에서는 거센 비판이 불었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0026380|#]] 대중을 상대로 인기나 얻었지 유홍준의 학문적 업적이 다른 학자들에 비해 대단할 게 없다는 것. 유홍준은 미술사학자로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미술사학계에서는 유홍준의 저서를 읽거나 논문을 거의 참고하지 않는다. 당시 고고학계나 미술사학계 등에서는 유홍준이 아닌 다른 인물들을 거론했었지만, 결국 유홍준이 최종적으로 임명되었다. --보통 사람은 겉을 중시한다.-- * 2005년 문화재청장으로 재임 시 [[북한]]의 초청을 받아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과 함께 방북했을 때, 만찬장에서 북한 스파이 영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5/06/003000000200506161046444.html|#]][* 북한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 삽입곡을 불렀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는 [[주체사상]] 예술 작법을 따르지 않고 [[소련]]식 리얼리즘 기법으로 촬영했다 하여 극작가가 숙청돼서 종적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김정일이 제시한) 주체예술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 * [[숭례문 방화 사건]] 당시 출장 중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네덜란드]] 출장 중이었다. [[루브르 박물관]] [[한국어]] 음성 서비스 개통식 참석 때문에 프랑스에 있었다고 한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숭례문 화재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들어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진 않다. 더군다나 본인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이, 당시 숭례문은 문화재청이 아니라 서울시 관할이었기 때문이다.[[http://v.media.daum.net/v/20170909070048311?rcmd=rn|관련기사]] 다만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기에 문화재청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차라리 평소 고궁을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니, 그렇게 개방하고 활용한 결과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쪽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 밝힌 바에 따르면, [[황지우]] 시인과는 친구 사이라고 한다. [[분류:1949년 출생]][[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인문과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학자]][[분류:미술사학자]][[분류:문화재청장]][[분류:기계 유씨]][[분류:중동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홍익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참여정부/인사]][[분류:대한민국의 무종교인]][[분류:더불어민주당 소속]][[분류:영남대학교 재직]][[분류: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