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홍준 (문단 편집) === [[권위주의]]적 행실 === 오동명 전 중앙일보 기자의 기록을 보면 행실이 매우 나쁘다.[* 이하의 내용은 오동명 전 중앙일보 기자의 저서, '당신 기자 맞아?'에 소개된 내용이다.] [[운동권/비판|운동권 출신이지만 권위주의적 언행을 일삼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지인인 유력자에게 일러바쳐 그 사람이 자신을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을 듣게 하기도 했다. 다음은 오동명 기자가 <지식인 지도가 바뀐다>는 기사에 쓸 사진을 찍기 위해 유홍준을 비롯한 서울대 미학과 출신 9∼10명이 함께 모여 있는 대학로에 있는 한 기획사무실에 갔을 때의 에피소드다. >약속 시간보다 40분이 더 지나서야 유홍준 씨가 마지막으로 도착했고, 나는 그 분들께 좌석에 앉아 있는 모습보다는 문 밖 계단에서 촬영을 하면 여러분들의 모습을 한 장에 다 담을 수가 있으니 협조바란다고 정중히 부탁했다. >그때 유홍준 씨가 말했다. ‘여기에는 연출의 대가(연극 연출자를 말함)가 있으니 그 대가의 연출대로 사진을 찍도록 하자.’ >나는 찍사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조금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참고, 연극 연출과 신문 사진 연출은 많이 다르니 제 부탁 좀 들어달라고 했다. 두어 번을 정중하게. >그러자 그 중 한 분이, ‘사진사 말 듣지’ 했고, '''유홍준 씨는 또 ‘사진사가 아니야, 사진기자셔어!’ 하며 존칭어를 빙자해서 완전히 비아냥거리는 투로 얘기를 했다.''' 소위 우리 나라 문화 지식인의 한 중심에 서 있는 분이, 다른 사람도 아닌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력을 자랑으로 삼고 다니는 사람이. >그러나, 나는 또 참고 문 밖에 나와 기다렸다. 몇 번을 다시 부탁했다. >두 분이 먼저 나와 보슬비가 약간 내리고 있는 계단에 서 계셨는데, 다른 분들은 내 부탁에 응하지 않고 여전히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득 이들이 [[86세대|소위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지식인 집단’]]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식인 기사에 나가는 사진입니다. 지금 여러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니 [[예비군]] 훈련장이 연상되어지네요. 먼저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늘 손해를 보는……, 저기 두 분은 미리 나오셔서 비를 맞고 계시니 좀 서둘러주시지요’라고 빗대어 말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끼어 내 옆으로 나오고 있던 유홍준 씨가 그 키 큰 얼굴로 작은 키의 내 몸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조그만 놈이 까불어. 내가 너희 [[중앙일보]]의 높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 유홍준은 중앙일보 소속 잡지 [[계간미술]] 기자 출신이다.] 니가 어디서 함부로!’ 이런 눈빛이었다면 내 선입관일까. >대충 자리를 잡고 선 것을 확인하고 앞에 계신 분들처럼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주문을 하자, 또 유홍준 씨가, ‘이 사람아, 이렇게 세워놓고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나!’ 했다. '조그만 놈이 까불어. 내가 너희 [[중앙일보]]의 높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 니가 어디서 함부로!’' 부분은 기자가 기분이 상해 집어넣는 내용이라고 읽힐 수 있으나, 뒤의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말썽을 피우고 다니나?” 국장실로 들어서자마자 [[틀:역대 중앙일보 편집국장|편집국장]]은 나를 나무라듯 물었다. >“기자 생활 1, 2년 한 것도 아니고 눈치 빠르게 행동해야지, 그렇게 시끄럽게 일을 처리해서야 능력있는 기자라고 할 수 있나? >여기 저기서 전화 왔었다는 얘기 못 들었나? 내게 유홍준 씨가 직접 전화했고, 문화담당 국장도 전화를 받았다고 하고, 또 '''[[홍라희|홍나희]] 이사장([[삼성문화재단|삼성미술재단]] 이사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이며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누님) 바로 밑에서 [[호암미술관]]장을 지내고 지금은 [[이화여대]] 미술관장을 지낸다는 사람은 홍나희 여사를 아주 잘 아는데 귀하를 가만 안 놔두겠다고 벼르더군.''' >'''다음날 [[동아일보]] 사진기자는 상냥하게 말을 잘 듣더라고 하더군.''' 귀하가 걱정돼서 하는 얘기야!” >“저도 유홍준 씨가 저를 위아래로 훑어볼 때 그걸 직감으로 느꼈었습니다. '''유홍준 씨가 다른 기자들에게 한 행태를 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내게는 그렇게 안될 것이다’라는 선입관이 조금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굽히려 하지 않는 나에게 국장은 결국, >"일을 시끄럽게 처리하지 말도록 해!"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편집국장 실을 빠져 나왔다. >편집국장실에 불려갔다 온 후, 문화부와 사진부 기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문화부의 한 차장 선배는, “오동명 씨, 큰일 한 번 치렀다며?” >“큰일은요.” >나는 머쓱해 하면서 말을 이었다. >“유홍준 씨라면 [[민주화 운동]]도 해서 1년인가 얼만가 감옥생활도 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내가 잘못을 했다면 후배뻘 되는 내게 그 자리에서 나무라든가 해야지 윗사람을 동원해서 가만 안 놔두겠다고 했다니 이게 어찌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의 행실일 수 있다고 봅니까? 그 알량한 [[빽]]을 믿고…….” >“오동명 씨가 정확히 봤소. 바로 그거야. 모두 [[가식]]이라는 거지.” 위에 나온 '다른 기자들에게 한 행태' 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체육부(레저팀)의 한 후배와 얘기중 유홍준 씨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대한 또 다른 사건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로구나 싶었다. >이야기인즉슨,전화가 걸려왔단다, 회사로. >‘나 유홍준입니다.’ >다짜고짜로 전화로 이름만을 대니 당연히 기자는 예상 못한 경우 누군지 알 수 없질 않은가. 그리고 전화 통화시 상대방이 알 수 있게 자기를 소개하는 게 예의 아닌가. >‘예? 누구시죠?’ >그러니 기자도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더욱이 한참 바쁠 때였단다. 그런데, >'''‘날 몰라요?’''' >이 말만 하고는 전화를 뚝 끊더란다. >그러나 이걸로 끝내지 않고 이후, 이 기자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당시(1997년) [[틀:역대 중앙일보 편집국장|편집국장]]은, 신문사 기자가 자기(유홍준)를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항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했다. >'''‘자네가 유홍준 씨를 무시했다는데, 그런가?’''' >"다짜고짜로 유홍준이라고 하니 전들 문화답사기의 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겠어요? 대통령이 내게 이름 석 자만 대고 전화를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물며….생각해 볼 겨를도 주지 않고 자기를 모르냐고 하며 전화를 끊어버리니, 이게 어찌 전화나 제대로 걸 줄 아는 사람인가 했어요. 계속 통화했더라면 문화기를 쓸 게 아니라 전화 거는 법부터 배워야겠다고 그 유씨에게 충고해 주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말을 듣고, 당시 편집국장 왈, >"아무 일도 아닌 일을 가지고…싱거운 사람이구만. 그런 것 가지고 전화는…" >하며 더 따져 묻지 않았다 한다, 그 편집국장은. >"이런 수준의 사람이 다른 분야도 아닌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돌아다닌다고 하니, 더구나 인기도 많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스럽기가 그지없다." [[https://omn.kr/fvk2|문화평론가 유홍준씨 때문에 내가 당한 이야기--내가 만일 편집국장이라면]] 이에 대해서 유홍준이 중앙일보 소속 잡지 [[계간미술]] 기자 출신이라 자신의 후배에게 [[똥군기]]를 부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위 글을 읽어 보면 그 정도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강준만]]은 인물과 사상 2000년 6월호에 기고한 '유홍준과 오동명 - 엉터리와 진짜'라는 글에서 오동열의 글을 인용하면서 유홍준의 "'문화권력'으로서의 '권력과시'와 '권위주의'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http://member.peoplepower21.org/index.php?document_srl=111799|#]] 후술할 성낙주와의 논쟁에서도 논쟁을 거부하고 비판 여론을 자신을 질투하는 자들의 음해 정도로 치부한 것도 강준만이 비판한 바가 있다. 여기에 유홍준 추종자들이 사실관계가 좀 틀리면 어떻냐, 아름다우면 그만 아니냐 운운하는 괴이한 옹호까지 해댔는데 이에 대해서 강준만은 "그야말로 큰일날 소리다. 아름다움만 느끼면 구체적 사실에 왜곡이 뒤따라도 좋다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