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홍준 (문단 편집) === 조선총독부 청사 관련 === 1995년 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전후할 때 그는 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침묵을 지켜 비판을 받은 바 있었다. 그가 침묵을 지킨 게 당시 철거론자였던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과의 학연을 무시 못했더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에 그는 [[월간 말]] 1997년 9월호에서 아래와 같이 항변했다. >이전 반대운동에 왜 동참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고고학계는 그걸 했지만 미술사학계는 동참 안 했어요. 난 미술사학계고, 또 박물관 건물의 이전은 새로 지어서 옮기는 게 낫죠. 그런데 당시 그것은 정직한 주장이 아니었어요. 그 주장은 '''총독부 건물을 허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짜 헐 것 같으니까 궁여지책으로 내건 주장'''이었고요. (중략) 총독부 건물은 헐어야 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헐고 있는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요. 그건 박물관 건물을 헌 게 아니예요. 총독부 건물을 헌 거지. > - [[월간 말]] 1997년 9월호 p22~29. <권두인터뷰 : 유홍준(유홍준-안철홍 기자 대담)> 이에 소설가이자 재야사학자 성낙주 씨는 유홍준 교수의 항변에 대해 "도대체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서 소속이 뭔 상관인가. 고고학계와 미술사학계를 편가름하는 것부터 가소롭거니와, 뭔 미술사학계가 자신의 과오를 지켜주는 방패라도 된다는 말인가"는 요지로 다음 달에 같은 잡지에서 아래와 같이 반박했다. [[http://m.blog.daum.net/chakraba/159|또, 같은 시기 <인물과 사상> 2권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게다가, '정직한 주장'이 아니라니, 박물관 관계자며 대학교수 등 5천여 명의 지식인들이 오직 구총독부 건물을 보존하기 위한 위장 논리로 문화재 보호를 들고 나왔단 말인가. 또한 총독부 건물을 헌 것이라면, 그 안에 있는 십수만 점의 유물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논리인가. 지금 유홍준의 시계는 몇 시인가. 구시대의 유물인 권위주의 시계를 차고 이 혼돈에 찬 세기말의 시계를 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설사 미술사학계가 몽땅 침묵했다 치더라도, 언필칭(言必稱) 문화유산을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유홍준은 혼자라도 나섰어야 옳았다. 정작 싸워야 할 때 모르쇠로 있었으면 반성하고 자숙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해 그분들을 매도할 수 없는 일 아닌가. > - 월간 말 1997년 10월호 p244~247. <'문화권력' 유홍준의 권위주의(성낙주 글)> 참고로 성낙주는 당시 창동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탄압을 받은 재야 운동가 출신이기도 했다. 그는 인물과 사상 2권에 글을 기고, 유홍준의 업적에 대해서 칭찬하면서도 그가 학연주의에 근거하여 편파적인 인물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는 비판을 한 바가 있는데, 유홍준은 성낙주의 비판에 대해서 자신을 질투해서 하는 궤변이라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처음에 유홍준을 존경하는 마음에 성낙주의 글을 게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를 표명했던 강준만이 깜짝 놀라서 성낙주를 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준만은 이후 인물과 사상 9권에서 당연히 유홍준이 논리적인 반박을 해올줄 알았는데 성만 내서 놀랐다고 술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