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화(전조) (문단 편집) == 생애 == 태조 광문제 [[유연(전조)|유연]]의 장자로 모친은 [[흉노]] 귀족인 호연씨(呼延氏)였다. 유화는 시기심이 많았고 은혜를 베푸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부황 유연이 한나라를 건국하자 대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유연이 황제에 즉위하자 대사마를 겸임하고 양왕에 봉해졌으며, 310년에는 태자에 책봉되었다. 그해 태조 광문제 유연이 붕어하자 뒤를 이어 즉위했고, 즉위한 직후 외숙인 호연유를 재상에 임명했다. 유화는 황제에 즉위했지만 배다른 동생인 [[유총(전조)|유총]]을 비롯하여 여러 동생들이 강대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했다. 마침 외숙부인 호연유가 이들을 숙청할 것을 간언하자 유화는 그 말을 받아들여 동생들에 대한 숙청에 착수해 유성, 유안국, 유유, 유융 등 다른 동생들은 살해하는 데 성공했으나, 유총에게는 내통자가 있어 실패했다. 유씨 황족들 중에서 가장 강대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던 유총에게 토벌군마저 격파당하고, 광극전의 서실에서 살해당했으며,('''하서정변''') 유총이 즉위하자 호연유도 죽음을 당하고 네거리에 효수되었다.[* 종제(従弟)이며 동시에 태조 광문제 유연의 처남이었던 호연유(呼延攸)는 숙부이며 악부였던 호연익의 아들이었다. 광문제 유연은 호연유의 무능하고 속물적인 인격을 꺼리고 싫어하여 결코 요직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폐제 유화는 외숙부 호연유와 사이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그를 재상직에 앉혔다. 유화는 외숙부의 조언에 따라 이복동생인 초왕 유총을 숙청하려 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파멸을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광문제 유연이 현명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호연유는 정치가로서는 무능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