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화부인 (문단 편집) === 초기 ===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나오는 줄거리와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쓰면서 인용한 [[구삼국사]]의 줄거리가 조금씩 다르다. 구삼국사는 현재 전하지 않지만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지으면서 저본으로 삼은 책으로 동명왕편 중간중간에 해설용으로 구삼국사의 내용을 끼워넣은 덕분에 고구려 동명성왕 신화의 오래된 유형 한 가지를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고구려 건국 신화에 의하면 유화는 본래 [[강]]의 신 [[하백]]의 딸이었다. 하루는 유화(버들꽃이란 뜻)가 [[자매]]들인 훤화(萱花 원추리꽃), 위화(葦花 갈대꽃) 등과 함께 강에서 놀던 중에 천제의 아들 해모수를 만났다. 그리고 유화는 해모수와 [[압록강]] 가의 집에서 [[동거]]하고 [[성관계|정을 통한다]]. 구삼국사에 따르면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놀다가 강가에서 놀고 있는 유화 자매를 보고 [[구리(원소)|구리]]로 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술상을 차려놓았고 자매는 그 집에 들어가서 술 마시고 노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해모수는 갑자기 나타나 문을 막고 자매들을 잡으려 했는데 두 동생은 운좋게 달아나고 유화 한 사람만 해모수한테 잡혔다. 그러나 해모수는 유화를 버려둔채 혼자 하늘로 올라갔고 유화의 아버지 하백은 유화가 부모의 허락도 없이 외간 [[남자]]와 놀아났다면서 크게 노하여 유화의 입술을 석 자로 쭉 늘려서 [[추녀]]로 만든 뒤 [[백두산]] 근처의 우발수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이 부분이 구삼국사에는 좀 다르다. 해모수가 자기 큰딸을 납치하고 감금했다는 말에 하백이 해모수에게 사람을 보내 꾸짖자 해모수는 유화를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유화가 그새 [[스톡홀름 증후군|해모수에게 정이 들어서]] 안 돌아가려고 했다고 되어 있다. 이를 계기로 해모수는 정식으로 하백에게 [[혼인]]을 요청했고 하백은 해모수와 술법 겨루기를 한 뒤에 세 번을 해모수가 이기고 나서 그를 [[사위]]로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자기 딸을 버리고 혼자 하늘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싶어서 7일은 지나야 깨는 [[술]]을 먹여서 취한 사이에 유화와 함께 가죽 자루에 넣어서 해모수의 [[오룡거]]에 실어 하늘로 올려보낸다. 하지만 하백의 생각과는 달리 해모수는 하늘에 도착하기도 전에 술에서 깼고 유화의 [[비녀]]로 가죽 자루를 찢은 다음 혼자서 오룡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에 하백이 "네가 저딴 놈을 [[사랑]]한 바람에 내가 이런 수치스러운 짓까지 했는데 이게 뭐냐, 결국 다 말아먹었다"면서 딸 유화를 내쫓은 것으로 나온다. 유화는 이후로 우발수에서 지내다가 그 곳에 [[사냥]]을 나온 [[동부여]]의 [[금와왕]]과 만나게 되었다. 이 부분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우발수 강가에서 만났다고만 되어 있는데 구삼국사는 더 자세하다. 우발수 강가에서 고기를 잡던 강력부추(强力扶鄒)라는 [[어부]]가 "요새는 물고기 잡으려고 강에 쳐둔 그물이 이상하게 자주 찢어진다"고 금와왕에게 호소했다. 그래서 금와왕이 쇠로 된 그물을 쳐 두게 했더니 입술이 석 자나 되는 여자가 물고기를 먹다 말고 그물에 걸려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늘어진 입술 때문에 무슨 질문에도 대답을 제대로 못하자 입술을 세 번 칼로 잘라내고 나니 그제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화의 사연을 들은 금와왕은 유화를 거두어들여서 [[부여]]의 궁궐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훗날 유화부인이 죽자 금와왕이 왕후의 예로 장사지내 주었다는 기록으로 보건데 유화부인을 아내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