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육도삼략 (문단 편집) == 성립사 == 두 책 모두 [[문왕(주)|주문왕]]의 군사인 [[강상|태공망]]이 지었을 것으로 전해져 왔으나,[* 삼략의 경우 [[고제(전한)|유방]]의 군사인 [[장량(전한)|장량]]이 황석공이라는 기이한 노인에게서 받은 태공병법이라는 책이 원본이라고 한다.] 청대 고증학의 연구로는 문장형식과 사용된 문체를 봐서는 후한에서 [[위진남북조시대]] 즈음에 만들어진 [[위서]]라고 한다. 그러나 위서지만 내용은 탁월하기 때문에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이나 일본까지 흘러들어와서 읽혔다. 누가 써낸 책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맛깔나는 명저가 나올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강태공으로 사칭할 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내거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래서 [[손자병법]]마냥 강태공이 쓴 병법의 원본을 후대의 누군가가 주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주류 학설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름은 포기할지언정 저서 자체는 후세에 남기려는 꼼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논리학에도 '권위에 호소하는 논법'이라는 게 있듯이,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자기 이름이 알려지는 걸 포기하는 대신 옛사람의 이름을 통해 권위를 빌려 자신의 책을 널리 알리려 했던 일이 나름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주장은 권위 있는 누군가가 한 주장이라고 날조를 한 사례라 볼 수 있다. 까놓고 말해 아무리 좋은 내용의 책이더라도 저자의 이름값 때문에 저평가 받거나 널리 알려지지 못할 우려도 있고, 게다가 당시 시대상 [[청담사상]] 등으로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이름 값 없으면 무시를 당하는 풍조도 있었다. 한편, 1972년 산동성 [[린이시]] 은작산(銀雀山)에서 출토된 한나라 시대 [[죽간]] 가운데 육도의 조각이 포함된것으로 보아,[* 이때 육도뿐만 아니라 울료자, [[손자병법]], [[손빈병법]]도 함께 출토되었다.] 적어도 한나라 초기에는 육도가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