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육손 (문단 편집) === 형주에서 보여준 지략 === 236년,[* 육손전에는 236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오주전에서는 234년의 전투만 기록되어 있다. 아마 육손전에서 오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자치통감은 이 일을 234년의 기록으로 본다.] 손권은 북쪽을 정벌하려고 육손과 [[제갈근]]에게 양양을 공격하도록 했다. 육손은 신임하는 [[한편]]을 파견하여 손권에게로 가서 전쟁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그런데 한편은 돌아오는 길에 면중에서 적을 만나 체포되었다. 제갈근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두려웠으므로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상([[손권]])은 이미 돌아갔고, 적군은 한편을 붙잡아 우리의 실정을 전부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강물이 말랐으니 응당 급히 떠나야만 합니다. 육손은 이 편지에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사람들을 재촉하여 순무와 콩을 심도록 하였으며 장수들과 평상시처럼 바둑을 두고 활쏘기 놀이를 했다. 제갈근이 말했다. >백언(육손)은 지략이 많으니, 반드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직접 와서 육손을 만났다. 육손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이미 요충지를 지키고 있고, 우리 병사들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병사들을 안정시키고 다양하게 변하는 계책을 편후에 물러나야 합니다. 지금 곧바로 후퇴함을 나타낸다면, 적군은 당연히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가까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은밀히 제갈근과 계획을 세워, 제갈근은 배를 감독하게 하고, 육손은 병마를 타고 양양성으로 향하였다. 적들은 본래 육손을 꺼렸으므로 황급히 성으로 되돌아갔다. 제갈근은 배를 이끌고 나오고, 육손은 천천히 대오를 정돈하면서 세력을 과장되게 나타내고 배를 따라 걸었으므로 적군은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대군이 백위에 도착하자, 육손은 사냥하러 간다고 말하고서 은밀히 장군 주준(周峻)과 장량(張梁) 등을 파견해 강하군의 신시, 안육, 석양을 공격하도록 했다. 석양의 시장이 한창 시끄러울 때, 주준 등이 엄습해왔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물건을 버리고 성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성문이 닫혀 있자, 적군은 직접 자기 백성들을 죽인 연후에 성문을 열었다. 오나라 군대가 머리를 베거나 생포한 자는 모두 1천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생포된 자들은 모두 구호를 받았으며, 사병들로 하여금 침범하거나 속이지 못하도록 했다. 가족들을 데리고 투항해온 자들에게는 사람을 시켜 다방면으로 돌보도록 했다. 만일 처자식을 잃었다면, 즉시 옷과 식량을 공급하여 두텁게 위로하여 돌려보냈는데, 간혹 감동하고 앙모하여 서로 손을 잡고 되돌아오는 자도 있었다. 이웃 지역의 백성들도 귀의했는데, 강하공조 [[조탁]], 익양비장 [[배생]]과 이민족 왕 [[매이]] 등은 모두 수하의 무리들을 인솔하여 육손에게 와서 귀의했다. 육손은 재물과 비단을 기울여 이들을 돌아보고 보살폈다. 또 위나라 강하태수 [[녹식]]은 병마를 관리하는 권한을 쥐고 항상 오나라의 변방 지역을 소란스럽게 하면서, 위나라 노장 [[문빙]]의 아들 [[문휴]]와 오랜 기간 화합하지 못했다. 육손은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되자, 즉시 녹석에게 거짓으로 회신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과 문휴가 오랫동안 불화로 틈이 벌어져 있으며 귀의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밀리에 당신에게서 온 편지를 조정에 바치고 표를 올려 인마를 모아 영접하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몰래 신속하게 준비를 끝내고 다시 귀의할 시간을 알려 주십시오. 육손은 편지를 변방 지역에 놓도록 했다. 녹식의 병사가 편지를 주워 녹식에게 보여주었다. 녹식은 두려웠으므로 직접 처자식을 호송하여 낙양으로 돌아왔다. 이로부터 녹식의 관리와 병사들은 그에게 귀의하지 않았으므로 면직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