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육손 (문단 편집) === 건업에서 === 229년에는 손권이 제위에 오르면서 육손을 상대장군과 우도호로 임명한다. 229년 9월, 손권은 동쪽의 건업으로 천도하면서 태자, 황자, 상서 등은 무창에 남도록 했는데, 육손을 불러 태자 [[손등]]을 보좌하도록 하고, 동시에 형주나 예장 등 세 군의 일을 관장하며 군사나 국사를 관리 감독하도록 했다. 당시 건창후 [[손려]]가 전당 앞에 투압란을 만들어 매우 정교하게 설치했다. 육손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마땅히 경전을 두루 살펴보고 스스로 새로움을 더하도록 힘써야 하거늘, 무엇 때문에 이런 놀이를 하십니까? 손려는 즉시 그것을 부수고 철거했다. 손권이 공자들 중에서 가장 친해하는 야성교위 [[손송]]이 병사들을 놀리며 훈련시키지 않았다. 육손은 이 일에 대해서 그의 수하 관리들의 머리를 깎는 형벌에 처했다. 또 남양의 [[사경]]이 [[유이]]의 형벌을 우선하고 예절을 뒤에 한다는 견해를 칭찬하자, 육손은 사경을 질책하며 예절이 형벌보다 앞선 지 매우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육손은 비록 몸은 궁궐 밖에 있었을지라도 마음만은 국사에 있었다. 그는 현재의 법이 너무 엄하고 상세하여 평민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하며 가벼운 형벌의 경우에는 [[고제(전한)|한고조]]와 [[진평]]의 경우처럼 조그만한 과실은 용서해주고 다시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줘야한다고 상소를 올려 당시의 일에 관해 진술했다. 전종전에 따르면 손권이 주애와 이주를 포위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먼저 [[전종]]에게 물었다. 전종은 이렇게 말했다.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이역은 바다가 장애물이 되어 그 사이를 끊어놓고, 물과 풍토에는 독기가 있는데, 병사들과 백성들이 그곳을 드나들면 반드시 질병을 낳게 되고 서로 전염시켜, 우리가 얻는 것이 얼마나 많을 수 있겠습니까? 손권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손권은 한쪽의 부대를 파견하여 이주와 주애를 취하려고 하면서 모두 육손에게 자문을 구했다.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臣)이 거듭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은 유리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만 리를 가서 땅을 탈취하여도 풍파는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고, 백성들은 수토(水土)가 바뀌어 반드시 질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손권은 이주를 정벌하러 갔지만, 과연 얻은 것이 잃은 것을 보충하지는 못했다. 전종전에 따르면 군대가 출동한 지 1년이 지나자, 병사들 가운데 질병 때문에 죽은 자가 10분의 8,9는 되었다. 손권은 매우 후회했다. 이후에 그는 전종과 이 일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전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때 신하들 가운데 간언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신은 그들이 충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23년, [[공손연]]이 맹약을 위반하자, 손권은 가서 정벌하려고 했다.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대한 적은 우리 경내에 있고, 변방 지역에 있는 자들은 아직 귀의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 배를 타고 원정한다면 반드시 적에게 엿볼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며, 만일 통일 대업을 완성할 수 있다면, 공손연은 토벌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복종할 것입니다. 손권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