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경신 (문단 편집) == 은퇴 이후 == 2011년 6월 두산과 계약이 만료된 후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재계약하지 않았고 [[2012 런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플레잉 코치로 일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해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단의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기수를 맡기도 했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명성이 가장 높은 한국의 운동선수인데다 국제 대회 출전 경력도 길어서 기수를 맡은 것으로 보인다. 선수 겸 플레잉 코치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전패를 당해 아쉬움 속에 은퇴하게 되었다. 올림픽 이후 2012년 9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2013년부터 두산 핸드볼 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그리고 2015년 2월 6일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에 공식적으로 선임되어 두산 핸드볼 팀 감독직과 겸임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하고 아시아선수권에서 6위에 그치자, 2016년 2월에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했다. 그럼에도 "나라가 부르면 가야 한다. [[대한민국]] 핸드볼에 힘이 될 수 있다면 국제위원 등 행정 분야를 맡겨도 피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국대 감독을 맡을 때 대표팀 선수들이 체육관에 도착하면 국민의례부터 하도록 했다고 한다. 2021년 4월 25일 [[뭉쳐야 쏜다 - 전설들의 농구대잔치]]에 용병으로 출연했으며, 5월 2일 분에서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현재 최장신 멤버 답게[* 그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前 배구선수 [[방신봉]]이 최장신이었다.] 상당한 경기력을 자랑하며 활약하고 있다.[* 사실 203cm이면 현재 KBL에서도 거의 최장신급 사이즈이며, 동호회 농구에서는 거의 [[하승진]]급 규격외 사이즈라고 볼 수 있다.] 핸드볼계의 레전드답게 은퇴 후 몸무게 20kg 이상 늘어난 상태에서도 코트 전체를 읽는 눈이 뛰어나고, 타고난 압도적 신체조건의 유리함도 리바운드나 골밑 몸싸움에서 잘 살리는데다가, 특이하게도 핸드볼과 무관한 부분인 농구 슛 정확도[* 자유투도 아마농구 기준 평균 이상일 정도로 좋다.]와 골 결정력마저도[* 급박한 상황에서 골 밑에서 슛까지의 과정이 탁월하다.] 뛰어나다. 고질적 무릎부상 문제로 지구력과 속도가 약하지만, 다른 부분들이 아마추어 농구계의 평균을 아득히 넘어가므로 가히 아마농구계의 서장훈급. 사실 축구 이벤트 때도 김동현보다 뛰어난 골키퍼 능력을 보여줬다. 30년전 고등학생일때 이미 태릉에서 농구나 배구 감독, 코치들이 종목 전향[* 당시 프로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국내 실업리그 구조상 국내에서 같은 위치일때 농구나 배구선수가 핸드볼선수보다는 경제적으로는 유리했던 게 사실이다. 연봉 및 스폰서부터 여러가지가 달랐다.]을 설득하러 찾아왔었다는 이야기가 진짜였음을 보여주는 엄청난 운동신경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