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극영 (문단 편집) === 한국 최초의 동요 '[[반달(동요)|반달]]' === 윤극영이 최초로 발표한 동요는 위에 나온 '달맞이'로 1924년 11월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왜 '반달'이 한국사 최초의 동요가 되었나 하면, 1926년에 윤극영이 발표한 동요집 때문이다. 이 동요집의 제목이 '반달'이었고, 윤극영은 이 동요집에서 노래 '반달'을 '달맞이'보다 앞서 1924년 10월 12일에 만들었다고 적었다. 발표한 것은 2년 늦었지만, 만들기는 '달맞이'보다 먼저 만들었으니 '반달'이 최초의 동요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가 윤극영의 대표곡이 되면서, 윤극영이 얘기한 1924년 10월 12일이 한국 최초의 동요인 '반달'이 발표된 날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초의 창작동요'라 불러야 할 것인데,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창작동요인가에 대해선 검토가 필요하다. 반달이 발표되기 이전인 1923년에 방정환 작사 정순철 작곡의 <형제별>이 발표되었고(번안곡이라는 논란이 있음), 윤극영이 작곡한 <고드름>과 <설날>이 반달보다 먼저 작곡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그 뒤 동요 발달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나 동요 관련 행사를 주최하는 방송국이 모두 한국 동요의 시작을 1924년으로 잡게 된다. '달맞이'도 실제로 1924년에 발표한 곡이므로 한국 동요의 시작이 1924년인 게 틀린 건 아니다. * 1984년 5월 5일 KBS에서 방송한 '푸른하늘 은하수 60년'에서는 1924년 9월에 이미 반달을 작곡했다는 자막이 나온다. [[https://youtu.be/7oX9bJbih1I|(0분 24초부터)]] 그리고 윤극영 본인도 이 방송에 직접 출연하여 반달을 작곡하기 한달여 전에 [[설날]]을 작사, 작곡하였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13분 3초부터) ** 지면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설날'과 '고드름'이 잡지 어린이 1924년 2월호에 수록되었고 '반달'은 1924년 11월호에 수록되어 설날'과 '고드름'이 반달'보다 9개월 앞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