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동균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야구는 대전에서 시작했다. 대전 문창초등학교와 충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청원고등학교(서울)/야구부|동대문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배명고등학교 야구부|배명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투수 유망주였지만, 연습경기 도중 던진 공이 팀 동료의 머리를 강타하는 사건 때문에[* 이때 윤동균에게 투구를 맞은 동료 선수는 한동안 [[기억상실증]]을 앓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윤동균은 당시 동료가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면 야구를 포기하고, 인생도 망쳤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사실 이와 비슷하게 선수생활이 망한 선수로는 [[이케빈]]이 있는데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잠깐 겨울에 미국의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다른 쪽에서 타자 훈련을 하던 선수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여러차례의 외과수술(광대뼈와 코뼈 골절) 및 안과수술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영원히 시력이 정상범위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정을 받고, 그때부터 제구력이 현저히 망가졌다고 한다. 결국 수년간 2군만 떠돌고 1군은 어쩌다 한번씩만 나오다가 최종적으로 은퇴를 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중국적자라 군문제가 있었지만, 한국에 온지 2년만에 눈에 생긴 시각장애로 군대면제가 되어 군복무 없이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투수로서의 자신감을 상실, 야수로 전향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부터 기업은행, [[포항제철 야구단|포항제철]]에서 실업야구 선수를 했으며, 강타자로 맹활약했다. 또한 [[이해창(1953)|이해창]]과 더불어 국제대회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국제용 선수'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B윤동균.jpg|width=100%]]}}} || ||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width=35]] '''[[OB 베어스]] 선수시절''' || 1982년[*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이 해의 나이가 무려 33세로 노장 중에서도 최고 노장 선수 군에 속했다. 참고로 이 당시는 빠르면 20대 후반, 늦어도 30대 초반만 돼도 대부분 은퇴를 하던 시기였고(실제로 [[김유동]], [[천보성]]은 은퇴했다가 프로 출범과 함께 선수로 복귀했다.), 윤동균의 2년 후배인 [[유남호]]는 일찌감치 현역에서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문,[* 특히 윤동균은 1982년 원년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전 구단 선수 대표로 나와 선서문을 낭독하는 역사적 장면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주로 3번과 4번을 맡으며 '''타율 0.342로 [[백인천]]에 이어 타격 2위를 기록했고''', 팀의 [[1982년 한국시리즈|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중심타자로 크게 기여한다.[* [[1982년 한국시리즈|그 해 한국시리즈]]에선 1번 타자로 나와 맹타를 휘둘렀다. 4번은 신예 1루수 [[신경식(야구)|신경식]]이 윤동균 대신 맡아 제법 활약을 보였다. 사실 윤동균은 거포 이미지와 달리 발이 빠르고 눈썰미가 좋아 국가대표 팀에서는 테이블 세터로 활약했고, '''36세'''이던 1984시즌에 무려 14도루를 기록한 바 있다.] 이후 외야수와 [[지명타자]]를 오가며 중심 타선에서 활약했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었는지 1988년 시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윤동균은 이미 [[백인천]]이 은퇴한 1984년 이후로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였다.], 1989년 시즌 선수 겸 2군 타격코치로 임명되어 간간히 경기에 출전하다 그 해 8월 1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경기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날 경기는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열린 은퇴기념 경기였고 주인공인 윤동균은 이날 4번 [[지명타자]]로 출장하여 첫 두 타석은 범타로 물러났지만, 4대 2로 앞서던 6회말 생애 마지막 타석에서 상대 선발 [[김시진]]으로부터 좌중간 담장을 직격하는 1타점 적시 2루타를 날리며 이날 OB가 7대 3으로 승리하는 쐐기점을 올리는 공을 세웠다.[* 은퇴 경기, 그것도 마지막 타석에서 좋은 타구를 날린 타자는 의외로 많지 않다. [[양준혁]]은 마지막 경기에서 [[김광현]]에게 삼진 3개를 당했고, [[김성한]]은 9회 2아웃 후에 대타로 나와 3루 정면 땅볼로 물러나면서 [[권명철]]에게 완투승을 헌납했다.] 이날 경기 후 윤동균은 관중들에게 은퇴사를 낭독하며 아쉬움에 눈물을 지었고, OB 선수단은 윤동균을 [[헹가래]] 치며 그의 은퇴를 축하해 주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1800289109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8-18&officeId=00028&pageNo=9&printNo=391&publishType=00010|당시 기사]] 그의 통산 기록은 '''594경기 출장, 560안타, 38홈런, 277타점, 263득점, 타율 0.285''' 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