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상철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PC통신]]인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등등 거대 커뮤니티에서 K리그를 씹어먹는 윤상철을 대표로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음에도 그는 역대 어느 대표팀 감독에게도 철저히 외면당했는데 이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당시 한국에선 활용하기 힘든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체격이 큰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발이 느렸고 경합능력도 떨어져서 [[서정원]]처럼 스피드로 수비수를 제치거나 [[최용수]]나 [[김도훈]]처럼 공중볼 척척 따내고 여차하면 피지컬로 상대 수비진을 비집고 들어가 골문을 열어젖히지 못했다. 활동폭도 좁아 [[황선홍]]처럼 페널티 박스 밖에서도 영향력을 미치는 플레이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눈이 즐거운 개인기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통산 101골 넘게 집어 넣을 수 있었던 건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득점감각과 슈팅센스가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슈팅파워는 평범한데 골키퍼와 수비수의 허를 찌르며 툭 차 넣는 타이밍이 예술적이었고 수비진 교란과 오프사이드 트랩 무력화에도 능한 [[포처]] 스타일이었다.[* 뒷날 인터뷰에서 제일 상대하기 힘들었던 선수는 일화의 [[신의손]]이었다고 밝혔다. 페인트 동작에 속지않고 끝까지 버텨서 정말 골치아팠고, 그가 없었으면 100골 달성이 훨씬 빨라졌을거란 소감을 남겼다.] 피지컬로 밀어붙이던 시절에 기교로 승부했다는 [[김현석(축구)|김현석]]보다도 더 유니크한 타입이었다. 이런 타입은 그 당시 한국 대표팀에선 써먹을 방법이 아예 없었고 경쟁자들은 너무 강했다. 당시 한국은 스트라이커는 무조건 피지컬 좋고, 발이 빨라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지도자들 일색인 축구 후진국 이었다. 더군더나 [[황선홍]], [[김도훈]], [[최용수]]라는 역대급 타겟형 스트라이커 3명이 날개를 편 시점이었다. 요즘 태어났으면 보다 체계적으로 교육받아 부족한 부분을 좀 더 끌어올리고, 전술적으로 맞춰서 활용이 가능했겠지만 90년대에는 어느것도 무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