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성민 (문단 편집) == 여담 == * 가족으로는 부인과 딸 2명이 있었다. * 윤성민은 훗날 [[인터뷰]]에서 패장으로서의 책임은 인정하지만 본인 나름대론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정적 패인이었던 [[제9공수특전여단]] 회군에 대해 [[노재현]] 국방장관, [[김종환(1923)|김종환]] 합참의장, [[이희성]] 중앙정보부장 서리[* 이후 반란군이 신임 육군참모총장으로 추대했고 반란군의 정권 장악 작업인 [[5.18 민주화운동]] 강경 진압에 협조한 인물이다.] 등이 전화해 제9공수특전여단 출동을 말렸기 때문이라며 공동 책임론을 제기했고, 당시 육군 지휘부 내에서도 유혈 사태를 피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주장했다. 노재현 장관이 [[주한미군]] 벙커로 자리를 옮겨가서 지휘에 지장이 많았고, [[충정부대]]인 [[제26보병사단]]과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을 동원하려 했지만 노재현 장관과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끝내 동의해주지 않아서 동원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이후 본인은 책임을 지고 [[전역]]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