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심덕 (문단 편집) === 미디어화 === * 이 정사 사건은 [[연극]]과 [[영화]]로도 많이 제작 되었다. [[파일:external/m.iphotoscrap.com/1438601131.jpg|width=300]] * 최초의 영화화는 1969년 안현철 감독의 <윤심덕>(1969)이다. [[신성일]], 문희가 주연으로, 각각 김우진과 윤심덕을 맡았으며, [[이순재]], 백영민, 주증녀, [[한은진]] 등이 조연으로 출현했다. 영화는 김우진과 윤심덕 두 사람의 만남에서부터 현해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까지를 담고 있다. [[파일:external/pds26.egloos.com/f0305659_521ee2667e453.jpg|width=300]] * 이후 1991년, [[김호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임성민(남배우)|임성민]], [[장미희]], [[이경영(1960)|이경영]] 주연의 "[[사의 찬미(영화)|사의 찬미]]"로 [[영화]]화되었다. 윤심덕을 맡은 장미희는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김우진을 맡은 임성민은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김호선]] 감독이 사의찬미 이후 차기작으로 다시 장미희, 임성민을 캐스팅해서 만든게 바로 한국영화계에 [[애니깽 사태|엄청난 파문]]을 몰고온 [[애니깽]]이다. 즉 사의찬미 이 작품이 1950년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충무로 인력들이 만들어낸 거의 마지막 작품이다.] * 뮤지컬 및 연극화는 1988년 윤대성에 의해서 사의 찬미로 희곡화 되어 극단 실험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90년에 뮤지컬로 재공연되었으며, 이후 2005년 공연에는 가수 [[바다(S.E.S.)|바다]]가 윤심덕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2년에는 [[글루미데이]]라는 뮤지컬에서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팩션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이 뮤지컬은 2015년 '[[사의 찬미(뮤지컬)|사의 찬미]]'로 이름을 바꾸어 재연되었다. * 2016년에는 연극 [[관부연락선(연극)|관부연락선]]이 공연되었다. 여기서는 김우진만 죽고 윤심덕은 주인공에게 구조되어 살아나지만,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아 생존을 비밀로 하고 로마로 떠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위에 나온 생존설을 차용한 것. * 2018년 11월 27일부터 [[SBS]]에서 [[사의 찬미(드라마)|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6부작 단막극. 하루에 2회씩 3일간 방영했으므로 3부작이 아니라 6부작이다. 11월 27일, 12월 3일, 12월 4일에 방송되었다.] [[신혜선]]이 윤심덕 역을, [[이종석(배우)|이종석]]이 김우진 역을 맡았다. * 2022년 [[애플TV+]]에서 공개한 드라마 [[파친코(드라마)|파친코]]에도 윤심덕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선자는 남편 이삭을 따라 오사카로 향하기 위해 '''도쿠주마루'''호에 승선하는 과정에서 화려한 옷차림을 입은 여 가수가 흘린 숄을 주워주고, 가수는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한 것'''을 잃어버릴 뻔 했다며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그날 밤 공연에서 선자를 위해 노래하겠다고 한다. 그날 밤, 임신 중인 선자가 3등칸의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동안, 여가수는 스테이크를 썰며 호사를 누리지만 동시에 옆에 앉은 일본 유력자에게 성희롱을 당한다. 이윽고 무대에 오른 여가수는 '''소프라노 아리아'''인 [[나를 울게 하소서]]를 부르는 듯 하다가 갑자기 [[춘향가]]의 한 대목 '갈까부네'를 부른다. 분노한 일본인 승객들이 순사를 부르고, 순사들이 달려오는 것을 목격한 여가수는 숨겨두었던 칼로 자결한다. 물론 실제 윤심덕의 일생과는 차이가 있고 이 캐릭터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극중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윤심덕에서 아이디어나 모티브를 따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도 [[김우진(작가)|김우진]]과 함께 등장. [[이선(조선, 혁명의 시대)|광무제 이선]]이 수집한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그렸다는 그림과 어진을 보는걸로 등장한다. 최신 고증에 충실한 작품답게 둘다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예술가 대 예술가로서 존경과 진보적인 사고 때문에 가족과 사회에 갈등을 겪는 인물들의 동질감으로 표현된다. 원래역사에서 둘의 자살이유 역시 정사가 아닌 일본의 억압적인 통치에 비관한 식민지 청년의 아픔으로 소개된다. [[분류:한국의 성악가]][[분류:한반도의 가수]][[분류:소프라노]][[분류:1897년 출생]][[분류:1926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인물]][[분류:익사한 인물]][[분류:실종된 인물]][[분류:평양시 출신 인물]][[분류:도쿄예술대학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