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증현 (문단 편집)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경제관료]]이다. 현재의 기획재정부 체제에서 장관으로 842일(약 2년 3개월)을 재직하여 한때 최장수 기재부장관 기록을 유지했는데, 10년 후인 2021년 4월 1일 [[홍남기]]가 이를 경신했다. 1946년 [[미군정|미군정 조선]] [[경상남도]] 마산부[*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17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과정,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공공정책 및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94년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다가 1994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재무부가 경제기획원과 통합되어 재정경제원이 출범하자 재정경제원에서 세제실장, 금융정책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대중]] 정부 때는 [[국립세무대학]] 학장, [[아시아개발은행]] [[이사(직위)|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9년 2월부터 2011년 5월까지 [[강만수]]의 뒤를 이어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그가 기재부장관에 임명된 시기는 리먼 사태로 인한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본격화되던 때였고, 재임 첫해에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2009년 0.3%로 플러스 성장률을 유지했으며, 이듬해에는 6% 이상으로 성장률을 반등시켰다. 덕분에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어려움을 조기에 벗어나는 데 공헌했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극복을 이끈 [[이헌재]] 전 부총리 등과 함께 대표적인 경제위기 소방수로 평가받고 있다. 2010년 8월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임하자 후임 총리인 [[김황식(1948)|김황식]] 총리가 취임하는 같은 해 9월까지[* 도중에 [[김태호(1962)|김태호]] 경남도지사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다가 여러 논란 끝 사퇴하면서 공백 기간이 길어졌다.] 약 2개월 동안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역임하였다. 공직을 떠난 이후로는 윤경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