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치호 (문단 편집) === [[윤치호 일기]]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윤치호 일기)] '''《尹致昊日記》'''. 1883년부터 1943년까지 일기를 썼다. 이 중 1905년 1월 1일부터 1912년까지의 일기는 105인 사건으로 조선 총독부에 압수된 뒤 실전되었다. 윤치호는 처음에는 일기를 [[한문]]으로 쓰다가 [[영어]]를 배운 직후에는 영어 실력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일기를 영어로 썼다. 영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창한 영어 일기를 썼다고 한다. 이후에는 [[한국어]]로 영어를 [[번역]]해 봤자 비슷한 [[단어]]가 없다는 이유로 계속 영어로 일기를 썼다.[* 윤치호는 영어 사전까지 만들지는 않았으나 영어 단어를 소개하고 [[문법]]을 기술한 준 영어 사전급인 《영어문법첩경》을 1911년 저술한 적이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미국에 처음으로 한국의 민담들을 전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일기에서 윤치호는 민족 계몽을 위해 필요에 따라 찬송가나 이야기 등을 조선어로 번역하면서도, 영어의 훌륭한 표현을 잘못된 조선어(bad Corean)로 옮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매우 불만스러워하는 기록을 여러 차례 남겼다. 특히 노래를 번역하면서 그랬는데, 윤치호는 본인이 그렇게 시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중간중간 수감 생활이라든지 국내외에서 터진 대형 사건들로 인해 글을 쓸 정황이 아니었던지 등의 이유로 일기가 끊긴 적이 있지만 윤차호는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7|무려 60년의 세월 동안]] 죽기 직전까지의 꾸준히 일기를 작성했다. 그의 일기는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자료이다. 인간 됨됨이가 어찌되었던 간에 <[[윤치호 일기]]>는 매우 꼼꼼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일기가 죄다 영어 아니면 한자라는 것. 거기다가 영어로 저술한 부분은 필기체로 날려썼기 때문에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그의 일기를 정확하게 읽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번역상의 난해함, 분량 덕분에 윤치호 일기는 아직도 [[국내]]에 완역이 되지 않았다.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는 미국 유학 시절(1892년)까지의 일기가 번역 및 출판되어 있다. 여기에는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 시사 이슈, 정치적 사건에 대한 윤치호 본인의 정보 수집 및 의견이 담겨 있어 시대사 연구에 유용하게 쓰인다. 미국 유학시에 쓴 일기는 19세기 말 [[서양]]에 건너간 한국인을 연구하는 관점에서 읽어도 재미있으며 [[문학]] 사상사에서 [[일제강점기]] 시기 일기 중 중요 대목을 발췌 번역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021023|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라는 [[책]]이 나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