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회(조선) (문단 편집) == 생애 == 본관은 무송(茂松)으로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 학천(鶴川),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조선 개국공신이자 [[정도전]]의 측근이었던 [[윤소종]]의 아들이다. 주로 [[세종대왕]] 시절 활약했다. 1401년에 과거로 제3등이 되어 사재 직장에 임명되었다가 응봉사 녹사로 옮겨졌다가 술에 취해 일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직무태만으로 순군옥에 갇혔으며, 1406년에는 좌랑을 지내면서 조수와 함께 수문 갑사를 때렸다가 순금사에 갇혔다. 예조정랑, 이조정랑, 춘추관 기사관을 역임하고 태조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이후로 예문응교, 지승문원사, 판승문원사를 역임했다. 세종이 즉위하고 1418년에 판승문원사 경연 시강관, 동부대언, 참찬관, 좌부대언 등을 역임하다가 1419년에는 형방대언, 우부대언, 병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422년에 김익정, 민의생 등과 함께 의금부에 갇힌 후에 파면되었고 3차례나 사헌부로부터 벌을 줘야 한다는 탄핵을 받았지만 벌은 받지 않았다. 곧 집현전 부제학으로 임명되어 복귀했고 1423년에 동지관사를 지내면서 고려사를 개수할 것을 명받아 1424년에 동지춘추관사를 지내면서 교정하고 편찬한 고려사를 올렸으며, 1432년에는 맹사성, 권진, 신장 등과 함께 팔도지리지를 편찬하고 1434년에는 자치통감훈의의 오류를 교정해 대제학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