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흥신 (문단 편집) == 생애 == [[중종(조선)|중종]] 때 [[권신]]인 [[윤임]][* [[윤원형]]과 달리 윤임에 대한 평가는 다소 논란이 있는 편이나 어느 쪽도 '악명'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악명과는 별개로 윤임이 정치력이 뛰어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분위기. 애초에 정계에서 닳고닳은 문신이 아니라, 무장 출신이다. 윤임이 좀 더 현명하게 처신했다면 사화는 피할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인종이 일찍 죽고 경원대군에게 전위하기로 결정된 순간 이미 윤임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왕위를 놓고 벌이는 정치투쟁에서 패자에겐 죽음 뿐인데, 처음부터 현명한 처신이고 나발이고 할 여지가 있을리가 없다.]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적자로는 막내이다.] 아버지가 [[을사사화]]로 [[숙청]]될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 죽음을 피한 대신에 신분이 [[노비]]로 떨어졌지만, [[선조(조선)|선조]] 때 윤임의 명예가 복권된 후 다시 [[양반]]의 신분을 회복하자 바로 무과에 응시해 장수가 되었다. 허나 노비의 신분으로 자란 탓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여 명문가의 후손임에도 양반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였고, 특히 진천 현감(종6품)에 재직 중이던 [[1580년]](선조 13)에는 글자를 알아 보지 못한다 하여 [[http://sillok.history.go.kr/id/kna_11310021_001|파직되기도 하고]], [[1582년]]에도 비위 사실이 발견되어 [[http://sillok.history.go.kr/id/kna_11508003_001|추고]](推考)당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