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은본위제도 (문단 편집) === 중국 === 은본위제를 채택한 가장 대표적인 국가였다. 기본적으로 중국인의 관념에 노란색은 황제의 색깔이라는 이유로 황금은 황제만이 쓸 수 있어서 기축통화로 쓸 생각 자체를 안했기 때문에 은을 기축통화로 쓰는 관념이 박혀있었고, 은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던 나라였다. 그래서, [[은행]](銀行)이란 한자어의 어원도 은본위제도에서 상인들이 은을 유통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금행(金行)이 아니라 은행(銀行)이라고 하는 이유는 중국이 장기간 은본위제 국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대세가 금본위제이기 때문에 채택을 포기했지만, 명청대부터 [[중화민국]] [[국민정부]] 시기까지 은본위제를 시행했다. 명나라, 청나라 시기의 경우 과장을 좀 보태자면 '''"은 공급이 절단나서 나라가 망조로 접어들었다"'''라고 말할수까지 있을 정도. 명나라 중/후기였던 16세기, 신대륙에서 은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각종 교역을 통해[* 특히 [[청화백자]]가 유럽에서 대박을 쳤다.] 중국으로 은이 쏟아져 들어왔었는데 [[1585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한 이후로 스페인 제국이 점차 내리막길을 타면서 은의 공급이 17세기에 이르면 뚝 끊겨버렸고, 이로 인해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다가[* 이 시기 명나라의 사회상에 관련된 기록을 보면 은을 찾으려고 백성들의 집과 무덤까지 관료들이 멋대로 파헤치는 상황이었다. 흠좀무. 또한 명나라의 은 부족은 단순히 명나라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조선]]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알다시피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의 빚 덕분에 17세기 초반 [[재조지은|명나라에게 절절 기던 상황]]이었고, 명나라 사신이 한 번 조선을 왕복할 때 마다 막대한 은을 ~~뇌물~~사례로 바쳐야만 했다. 그 결과 명나라 조정 사이에서 조선행 사신은 최고의 재태크(...) 방법으로 인기를 모았고 점점 부담해야하는 은의 양이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마지막에는 조선의 1년 예산에 가까운 은을 바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다(...)] 결국 [[이자성]]과 [[청나라]]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은이 모자라서 정복당했다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청나라 시대 역시 마찬가지여서 소위 마제은이라고 불리는 [[은화]]가 각종 거래에 사용됐는데[* 물론 고액화폐이다보니 일반 백성들은 은보다 동전을 주로 쓰긴 했다.] 19세기에 이르면 영국이 [[차]]와 [[비단]] 등의 거래 덕분에 엄청난 은을 청나라에 바쳐야했고, 이에 꼭지가 돈 영국이 은을 다시 회수하기 위해서 청나라에 팔아버린 것이 바로 인도산 아편. 그리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아편전쟁]]. 청나라 멸망 이후 수립된 [[중화민국]]은 [[북양정부]] 시절부터 은본위제를 폐기하고 금본위제로의 전환을 고려하였으나 행정력과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 부족, 자본 부족으로 포기해야 했다. [[국민혁명]] 이후 수립된 [[중화민국/국민정부|국민정부]]는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금본위제도]]로의 전환을 고려했지만 자본력 부족으로 1933년의 [[폐량개원]]을 통해 은본위제를 기반으로 하는 개혁으로 만족해야 했다. 중화민국이 은본위제를 포기한 것은 1934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행정부가 은구입법을 실시하면서 중국의 은 유출 현상이 심각해지면서부터였다.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이한 중화민국은 미국의 금을 구입하여 금본위제를 실시하고자 했으나 미국이 거절했고 이 때문에 영국과 협력하여 1935년 11월 4일 [[법폐개혁]]을 단행하여 은본위제도를 폐기하고 관리통화제를 실시하였다. 신화폐인 법폐는 미국이 중국의 은을 구입하면서 제공한 달러로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한편 일본이 수립한 [[만주국]]도 은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는 대륙과의 교역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주국 경제의 특성상 중국의 화폐제도와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화민국 정부가 은본위제도를 폐기함에 따라 1935년 12월, 만주국도 일본엔과의 연계로 전환함에 따라 중국의 은본위제도는 완전히 종식을 고했다. 다만 서북의 [[마부팡]] 군벌이나 운남의 [[룽윈]] 군벌 등은 국민정부에 저항하면서 법폐를 쓰지 않고 은본위제도를 비밀리에 유지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