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은언군 (문단 편집) ==== 유일한 형제 ==== [[정조(조선)|정조]]는 은언군을 아꼈는지 수시로 이복동생을 유배지에서 몰래 불러내어 만났는데, 엄연히 죄인 신분이었던만큼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가 "어찌 병가에서 계책을 내어 적을 속이듯 하십니까?"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벌여가며 만났다. 겨울밤에 미행을 나가 썰매를 타고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만나기도 했다고.. 그때마다 [[노론]], [[소론]], [[남인]]들까지[* 왕이 뭐라던 간에 어쨋든 은언군은 역적의 아비니 정조 덕에 명함 내밀게 된 남인들까지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정순왕후(조선 영조)|정순왕후]]와 함께 이를 크게 규탄했지만 정조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민심이 (이유야 어쨌건) 절절한 우애를 보이는 정조에게 쏠리면서, 처음에는 "사저에 나가서 살겠다!"고까지 할 정도로 강경하게 나오던 정순왕후도 의례적인 반대에 그치게 되었다. 사실 형제간의 우애도 우애이지만, 당시 은언군은 정조를 제외하면 사도세자의 자식 중 유일하게 생존한 자식이었으므로 이런 정조의 행동은 곧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성을 홍보하기 위한 정치적 쇼의 성격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사실 단순히 은언군을 보호하려는 의도였다면, 오히려 정순왕후와 신하들이 납득할 만한 곳(즉,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은언군을 유배시키고 조용히 편하게 살도록 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정조가 이렇게 행동한건 굳이 은언군의 존재감을 키우는 부작용을 감수해서라도 할만한 가치가 있는 행위였다는 뜻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호감이 아예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정순왕후가 한 발 물러선 이유도 민심도 민심이지만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효성'은 대단히 강력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민심이 정조에게 쏠린 다른 이유도 '전하께서 이복 형제를 저토록 아끼시니 참으로 효성스러운 분이다'라는 분위기로 흘러간 것. 정순왕후가 정조의 할머니이니 "아비에 대한 효만 하고 할미에 대한 효는 안 하시렵니까? 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정순왕후가 할머니라고 해도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니니, 사도세자가 정순왕후보단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이는 은언군 이인의 존재를 정계에 강력히 각인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정순왕후와 노론은 은언군을 사형시키라고 주장했으나 정조가 거부하면서 은언군은 무사한다. 정조는 이후로도 은언군을 석방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그때마다 정순왕후와 노론의 강력한 반대로 모두 실패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