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을미사변 (문단 편집) == 황후의 생존 오보 == 2013년 7월 1일, 정상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통합 인문학 연구소 연구교수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 보관소와 [[영국]]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황후가 을미사변 때 죽지 않고 탈출했다'는 내용의 외교 문서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정 교수가 발견한 문서는 1896년 2월 6일 [[러시아]] 주재 [[독일]] 공사 후고 라돌린이 총리 앞으로 보낸 암호 문서 해독문인데 '러시아 외무대신 로바노프가, 자신의 정보에 따르면 죽었다고 이야기되는 조선의 황후가 아직 살아있다고 나에게 말했다.'고 한다.한국 주재 [[러시아 제국|러시아]] 공사(베베르)는, 황후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수 있는지를 한 명의 [[한국인]]으로부터 매우 비밀리에 요청받았다고 한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한성 주재 [[영국]] 총영사 월터 힐리어가 보낸 문서도 발견했는데 이 문서에는 "[[고종(대한제국)|대군주]]와 왕태자([[순종(대한제국)|순종]])는 피살을 모면한 것 같다. 그리고 '대군주는 황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말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는 것. 힐리어는 을미사변 직후 작성한 문서에서도 '[[일본인]]들이 [[궁녀]] 서너 명을 죽였으며, 황후는 사라졌는데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으며 이후 힐리어는 베베르의 방문을 받았는데 베베르가 황후의 생존 가능성이 있음을 말했다는 보고서도 작성했다고 한다. 과연 정 교수가 발견한 문서가 실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건지는 의문 부호가 달리기는 한다. 만약 황후가 탈출했다면 왜 이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는지 쉽게 납득하기는 힘들다. 황후가 살아 있었다면 오히려 자신의 생존을 이후에라도 드러내서 [[일본]]을 궁지로 몰 수도 있었는데 왜 [[고종(대한제국)|고종]]이나 [[명성황후]]가 그런 카드를 활용하지 않았을까? 명성황후는 이전 [[임오군란]] 때도 큰 난리통에 궁녀 옷으로 변장하고 궁을 탈출해 숨었고 조정에서는 황후 실종을 '사망'으로 공식 선포하여 황후의 [[국상]](國喪)을 선포한 적이 있다. 만일 황후가 살았다면 임오군란의 해프닝이 그대로 재연된 셈인데 그때는 사태가 진정된 후 황후가 직접 돌아왔지만 이 때는 그러지 않았다. 또 일각에서는 [[일본]]이 [[외교]]가에 역선전을 살포한 걸 [[독일]]과 [[영국]]이 착각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정 교수와 일부에서는 "당대 최강대국인 독일과 영국이 일본의 역선전을 아무 확인도 않고 덜컥 믿고 본국에 보고했겠느냐??", "황후는 일본의 재암살 시도를 피하기 위해 숨어 살다가 곧 사망했을 것이다"라는 반론도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