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을밀대 (문단 편집) === 상세 === 을밀대 이름의 유래에는 다양한 설화가 있는데, 옛날에 을밀선녀(乙密仙女)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설화가 있고, 또 다른 설화로 6세기 무렵 평양성을 세울 때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인 [[을밀]] 장군이 이 곳을 지키며 싸웠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외에도 순 우리말인 '웃미르터' 또는 '웃밀이언덕'을 [[이두]]로 음차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4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창작과 비평사, 2011에서 인용.] 구조는 웃밀이언덕 벼랑에 11m 가량의 축대를 둘러 쌓았고 그 위에 정면 3칸(7.46m), 측면 2칸(5.29m)에 [[팔작지붕]]을 올린 정자를 설치했으며, 정자 기둥은 1m 정도의 4각 돌기둥을 밑부분에 받치고 그 위에 흘림기둥 이어 세우는 식으로 하여 비바람을 피하도록 했다. 현재의 정자는 [[조선]] [[숙종(조선)|숙종]] 40년([[1714년]])에 축대를 보수하면서 건축하였고 [[1960년]]에 전반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또한, 정자 특유의 [[예서]]로 쓰인 현판은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서북지역의 서예가였던 호정(湖亭) 노원상(盧元相, 1871~1926)이 쓴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군사적 목적으로 세워진 망루이지만 을밀선녀가 경치에 반했다는 설화로 알 수 있듯이 을밀대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관람하는 누각의 역할도 맡고 있으며, 특히 을밀대 밑을 흐르는 [[대동강]]과 하중도인 능라도[* 문화어로는 릉라도.]의 풍경과 사방으로 트인 평양평야가 매우 수려하다. 그 때문인지 '평양8경' 중 하나인 '밀대상춘(密臺賞春)'[* 을밀대의 봄 풍경.]으로 꼽히기도 하며 매년 봄마다 아름다운 봄 풍경을 관람하러 오는 관광객으로 붐빈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