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을사조약 (문단 편집) == 배경 ==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9일 인천에 상륙하고 다음날 서울을 점령하였다.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사전에 오오베와 초오미라는 장사꾼을 통해 외부대신 [[이지용]]에게는 1만 엔을 주어 매수하고 군부 대신 [[이근택]]을 협박하여 일본에 협조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한편 일본군 제12사단장 이노우에 히카루는 탁지부 대신 겸 내장원경 [[이용익]]을 납치하여 유람을 시킨다며 일본으로 압송하고 육군 참장 이학균, 육군 참령 현상건, 진위대 4연대장 길영수를 서울에서 추방하고 감시하였다. 그리고 2월 23일 하야시는 일본군을 이끈 이노우에와 같이 [[경운궁]]에 들어와 매수했던 [[이지용]]과 일본군의 한반도 내 주둔과 사용을 허가하는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1904년 8월 22일에는 외부대신 서리 [[윤치호]]와 1차 한일협약을 체결해 재정고문인 메가타 다노타로와 외교고문 [[더럼 스티븐스]]를 두어 노골적으로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만주에서 계속되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자 대한제국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기 위해 열강으로부터의 동의를 얻기 시작했다. 1905년 7월 27일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허용하는 대신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인도]]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902년 1차 영일동맹에서 약속하였던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없애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할 것을 동의받았다. 그리고 1905년 9월 5일 러일전쟁을 끝내면서 맺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대한제국 지배의 걸림돌이었던 러시아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배제시킨다. 결국 1894년 [[청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진 일본의 한반도 침략 프로젝트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