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을지문덕 (문단 편집) === [[드라마]] === * 1992년 [[KBS]]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원로배우 김길호[* 1983년 KBS 드라마 <개국>에서는 [[이제현]] 역, 1983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추동궁마마>에는 [[최영]] 역. 2017년 2월 6일 향년 83세로 타계.]가 연기했다. 백발에 긴 수염을 늘어뜨린 선인과 같은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젊은 시절의 연개소문이 그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환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안시성]]에는 철이 많이 나니 반드시 지키라는 조언을 남긴다. *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에서는 배우 [[이정길]]이 연기했다. 배우의 연기력은 출중했으나 유사역사학과 서토정벌에 함몰된 주제의식, 그리고 캐릭터 붕괴가 판을 치는 각본 때문에, 작중 을지문덕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서토정벌만 외쳐대는 전쟁광 꼰대로 묘사되고 말았다(이는 [[강이식]]도 마찬가지). [[수나라]]군의 보급문제 및 장군들 간의 갈등을 철저하게 이용하며 화전양면전술을 활용했던 명장이, 정작 자국의 전쟁 수행 능력, 보급, 작전, 전선에 대한 대응 등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공격과 전쟁만 외쳐대는 똥별[* 가령 47회에서는 을지문덕이 피를 토하며 [[영류왕|고건무]]에게 일갈을 하는데, 진작에 서토로 진격했다면 이미 탁군을 넘어서 장안에 도달했을 것이라 외친다. 저 시점에서 [[수나라]]는 또 다시 고구려를 침공하기 위해 3차 침공 시기 탁군에 30만 대군을 집결 시키고 있었다.]로 묘사되고 말았다. 초반부의 [[수나라]] 파트에서도 벌써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대모달 벼슬을 직책하고 있었으며 고구려에 쳐들어온 수나라 군대를 박살냈다. 5화부터 시작되는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영양왕]]과 함께 출전하며 한왕 양량의 군대를 대파했으며 [[영류왕]]이 태제 자격으로 정사를 관할하기 시작하자 [[강이식]]과 함께 잠시 물러나 향후 수나라와 전쟁을 대비하였다. 막리지였던 [[연태조]]가 극에서 퇴장한 시점인 왜국으로 떠난 이후 재상직인 막리지를 맡게 된다. 살수대첩이 무슨 수공으로 수나라 군대를 쓸어버린 것처럼 묘사되었는데 살수대첩 당시에 수공으로 수군을 물리쳤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그는 강이식 대장군과 더불어 조정 내 강경 주전파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퇴각하는 수나라 군대를 굳이 추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태제인 영류왕[* 영양왕이 중병에 걸려 영류왕이 태제 자격으로 정사를 맡고 있었다. 영양왕은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영류왕이 태제로 책봉되었던 것.]에게 "왜 추격하지 않았느냐"며 불만을 대놓고 드러낸다. 이후 수나라의 4차 침입 때 [[곡사정]]을 돌려보내며 수나라와 화친하려는 영류왕에게 화친하지 말 것을 간언하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분사(忿死)한다. 영류왕에게 마지막까지 한 말은 작중 초반에서 한 "역사에 죄를 짓지 마십시오."였다. 을지문덕이 분사한 이후 요동성에서는 강이식, [[양만춘]], [[온사문]] 등의 장군들이 슬퍼했고 강이식은 항복을 전하러가는 사신들의 얼굴도 보기 싫다고 말하였다. 곡사정을 서부 욕살 사비류가 수나라 군영으로 데리고 가 을지문덕의 죽음 등을 거짓 항복의 이유로 내세웠고 [[양제(수)|수양제]]는 그의 죽음을 듣고 [[강이식]]처럼 보고 싶은 인사였다며 안타까워하면서도 회군할 명분을 얻게 되었고 이를 끝으로 [[고구려-수 전쟁]]도 마무리로 접어들며 1부에서 [[영양왕]]이 승하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고구려 파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이다. * 2007년 KBS 드라마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는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안시성주]] 양만춘이 을지문덕의 후계자로 나오고 안시성에 을지문덕의 사당이 있어서 양만춘이 을지문덕을 기리며 고민하는 묘사[* 양만춘이 그때([[고구려-수 전쟁]])는 저 분이 계셔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고 한탄과 고민을 하지만 뒤에서 듣고 함께 있던 대중상이 그때는 저분이 계셔서 승리했지만 지금은 양만춘 장군이 계신다.라고 충언을 하는 모습으로 언급된다.]도 나온다. [[안시성 전투]] 직전 양만춘은 [[당나라]]군을 안시성에 묶어 둘 방책을 찾는데 그 방법은 피로 물든 옛 수나라 깃발과 여수장우중문시를 보내 도발하는 것이었으며 사신으로 보낸 [[대중상]]을 통해 "당나라 황제의 목을 연개소문에게 뺏길 생각은 없다."라는 독설까지 보냈다. 당연히 [[태종(당)|당태종]]은 크게 분노하고 안시성 공격을 결정한다. 다만 당태종도 무작정 분노해서 홧김에 결정한 것은 아니고 "이런 도발을 해서 내 판단력을 흐리게 할 정도면 이 양만춘이란 자는 참으로 뛰어난 자다. 이런 자를 배후에 두고 [[평양시|평양성]]으로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위험하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나온다. 실제 [[안시성 전투]] 당시 당나라군은 [[안시성]] 공격과 평양성 진공을 두고 고민하였으나 안시성을 배후에 두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장손무기]]의 주장을 당태종이 따라서 안시성 공격을 강행한 것인데 이를 살수대첩 및 을지문덕과 연결해서 각색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