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을지문덕 (문단 편집) === [[김부식]]의 평가 ===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도 <을지문덕 열전>에서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낸 을지문덕을 칭송하면서 엄청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삼국사기》 <열전>에서는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김유신]] 열전> 다음이 바로 <을지문덕 열전>이다.[* 참고로 분량 차이는 세 권의 분량을 독식하고 있는 <김유신 열전>에 비해 너무 소략한데, 편찬 당시 이미 고구려의 기록은 거의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김부식 또한 《삼국사기》의 사론으로 "비록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지략과 [[장보고]](張保皐)의 의롭고 용맹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서적이 아니었던들 흔적이 없어져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의 경우에는 열전이 3권이나 되어서 굉장히 편파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실상은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도 그 이름을 안다는 김유신과 관련된 기록이 부족해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이 허무맹랑한 기록들이 가득 담긴 [[김유신]] 가문의 <행록>을 추리고 추려서 만든 책이다.] >을지문덕은 자질이 침착하고 굳세며 지략이 있었고, 아울러 문장을 짓고 해석할 수 있었다. > >양제가 요동의 전쟁에서 동원한 군대의 규모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대단했다. 고구려는 한쪽 지역의 작은 나라였지만, 이를 막아냈다. 스스로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나라 군대를 거의 섬멸하였으니, '''이것은 을지문덕 한 사람의 힘이었다.''' 《[[춘추좌씨전]]》에서는“군자(君子)가 있지 않으면, 그 어찌 나라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다. 또한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은 기록의 부재로 인해, 을지문덕과 관련된 기록을 《[[수서]]》에서 그대로 옮겨왔으나 어떻게든 을지문덕에 대해서 좋게 평가하고자 포장했음을 알 수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