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응우옌푹응우옌 (문단 편집) == 생애 == 1563년 8월 16일, 완복원은 아버지 완황의 6남으로 태어났다. 1585년, 서양의 해도(海盜)가 난리를 일으키자, 완복원은 군사를 이끌고 그 해적들을 격퇴하여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1602년에는 광남성(廣南省)을 지키면서 그곳을 개척하였다. 1613년, 아버지 완황의 병이 악화되자 완황은 6남 원을 후에(順化/순화)로 불러들였고, 완황은 그를 믿고 남방을 지키게 하였으며 정씨에게 맞서라고 한 후 사망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뒤를 이어서 완복원은 왕위를 계승하여 완주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1623년, 북방의 [[찐씨 정권]](정주)에 정변이 일어난 가운데 정왕(鄭王) [[정송]](鄭松)이 죽자, 그의 아들인 [[찐짱|정장]]과 정두(鄭杜)가 왕위를 두고서 다투었다. 이 소식은 남방의 완복원에게 알려졌고, 완복원은 이것을 정송의 보응(報應)이라 하였다. 그리고 무장 완유일(阮有鎰)이 북벌을 건의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완복교(阮福喬)를 조문보냈다. 1626년, 정주의 왕 정장이 [[후여조]]의 이름을 빌려 완유목(阮有本)을 후에로 보낸 후 완주의 완원에게 공물을 재촉하였다. 완원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공물 요구를 거절하였으며 완계(阮啓), 완명세(阮名世)에게 군사를 이끌게 하고 남하하였다. 이때부터 정주와 완주 두 정권은 사이가 나빠졌으며 정완분쟁(鄭阮紛爭)이 시작되었다. 1635년 11월 9일, 완복원은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그 뒤를 이어서 차남 완복란이 완왕(阮王)으로 즉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