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응제시주 (문단 편집) == 내용 == 권근이 지은 응제시는 총 24수로 나뉘어져 있다. 최초 왕경작고(王京作古) 외 8수는 [[고려]]의 멸망, [[조선]]의 건국, 명나라로 오는 동안 본 [[평양]], [[압록강]], [[요동]] 등의 풍취를 읊었다. 다음 시고개벽동이주(始古開闢東夷主) 외 10수는 [[동이]], [[삼한]], [[신라]], [[탐라]] 등 한반도 역대 국가들의 흥망과 [[금강산]], [[대동강]] 등 한반도의 아름다운 명승들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마지막 청고가어내빈(聽高歌於來賓) 외 6수는 명태조가 베풀어준 잔치에서의 흥취를 시로 지었다. 전체적으로 한반도 역사의 유구함과 독자성, 그 땅의 아름다움과 신비함, 풍요로움 등을 묘사하는 한편 명태조의 덕을 칭송하고 중국과 한국의 유구한 우호를 시로 표현했다. 이후 손자인 권람은 역사인식을 가지고 각 시에 우리나라의 고대사와 그와 관련한 신화, 전설, 설화 그리고 역사지리에 관한 기록 등을 첨부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각종 역사책과 여러 잡록(雜錄)들을 인용하여 고대 한반도의 역사와 신화, 설화 등의 내용을 상세히 주석으로 달았다. 특히 현대에는 [[단군조선]]의 내용이 나오는 책으로 유명한데 권근의 시 중에는 요(堯)임금 원년 무진에 신인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사람들이 단군이라 불렀다는 시구가 있고, 거기에 권람이 단 주석에는 상제(上帝)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웅(雄)이 천부인 3개를 받고 삼천인과 함께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환웅 천왕(桓雄天王)이 되었으며, 바람, 비, 구름의 신을 거느리고 인간사 360여 가지 일을 주관했다고 나와 있다. 이후 웅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비서갑(非西岬) 하백(河伯)의 딸을 맞아 아들을 낳아 부루(夫婁)라 하였다. 그가 곧 동부여의 왕이다.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阿斯達)산으로 들어가 신이 되었다. 단군은 1048년 동안 살았다' 등의 내용이 나온다. 이를 통해 똑같이 성리학적 사관에 입각해있지만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치우친 나머지 기자를 숭상하여 단군보다는 기자에 대한 연구만 몰두했던 16~17세기의 사림들과는 다르게 조선 초기에는 조선 역사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려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보물]] [[분류:조선의 도서]] [[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 [[분류:진주시의 문화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