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령군(1385) (문단 편집) == 생애 == [[고려]] 말인 1385년(우왕 11년)에 이방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392년(태조 원년)에 조선이 건국되고 아버지가 회안군으로 봉해지자 그도 원윤(元尹)에 봉해졌다. 이후 1398년(정종 즉위년) 의령후(義寧侯)를 거쳐 1400년(정종 2년)에 의령군(義寧君)으로 개봉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이맹종은 아버지의 편에 서서 책사 노릇을 하며 숙부 이방원에게 맞섰다. 불과 16세 밖에 안된 나이임에도 활을 매우 잘 쏘았고, 꾀가 많아 중요한 역할을 맡는 등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결국 패배했고, 아버지와 함께 생포되어 [[황해도]]로 유배를 떠났다. 임금이 된 [[태종(조선)|태종]]은 이방간과 이맹종 부자의 작위와 녹권[* 고려, 조선시대에 공신으로 책봉된 신하에게 지급했던 문서]을 모두 회수했으나, 그들을 죽이라는 신하들의 상소는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세종(조선)|세종]] 제위 시기인 1421년 이방간이 [[충청도]] [[홍주목]]에서 사망하자 이맹종은 유배지를 그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1423년부터 이맹종의 탄핵과 사형을 주장하는 [[의정부]]와 [[육조]]의 상소가 빗발치자, 세종은 그에게 [[자살|자진]]을 명했고, 결국 이맹종은 7월 11일 자진했다. 그의 시신은 외가가 있는 [[경기도]] [[여주시]]에 안치되었으나 묘는 후일 실전(失傳)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