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병 (문단 편집) == 서브컬처에서의 묘사 == 게임이나 영화 등에선 초반에 모든 면에서 정규군에 뒤떨어 지지만 초반을 책임지며 민병대 자체가 점점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문명 5]]의 한국 문명에서 임진왜란 시나리오(사무라이의 침공)의 전용 특성으로 의병이 나온다. 효과는 유닛이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절대로 멸망 당하지 않으며 도시를 탈환하면 추가 유닛이 나오는 것. 그러나 그 추가유닛이라는게 고작 파이크병[* 이 시나리오는 창병이 쓰레기 취급받던 오리지널을 바탕으로 한다. 당장 싸워야할 사무라이, 머스킷병 전투력은 16, 파이크병은 겨우 10...]과 궁수(...)이고, 그나마 일본군과 싸울 수 있는 유닛인 머스킷병은 적게 나와 큰 도움은 안된다. 궁수일 경우 어찌어찌 아군 진영까지 옮겨 석궁병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나머지는 그냥 [[고기방패]]로 쓴다.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RTS게임인 [[임진록 2]]의 확장팩인 조선의 반격에서 지대지가 가능한 근접 공격 유닛으로 등장한다. 본영에서 의병 모집 연구를 마친 이후 생산 된다. 일꾼이 쌀800의 비용, 일반 창병이 쌀400의 비용인데 비해 쌀 300이라는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되는데, 의병이란걸 반영했는지 제대로 된 무기가 아닌 농기구인 [[괭이]]로 공격하는데 정규군인 조선 창병과 공격력이 똑같은 비범함을 보여준다. 단 방어력이 일꾼보다도 낮아서 전투 유닛 보다는 [[지뢰]]제거라는 특수한 목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 단, 지뢰를 매설하는게 명 나라의 장수인 [[여여문]]이라서 임진왜란 당시 '일본과 싸우기 위해 조직 된 민병대 단체'라는 실제 역사와 다르게 vs일본전 보다는 vs명전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닛이다. [[파일:독-특.jpg]]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을 두고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도 없으면서 위기가 닥치면 떨쳐 일어나는 독특한 유전자를 가진 민중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이는 엄밀하게 사실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일단, 의병은 일정수준 이상의 중앙집권화가 이뤄져[* 여몽전쟁때 최씨 정권이 지방반란을 진압하고 기존 문벌에 밀렸던 한미한 출신들을 등용해 중앙의 지배력이 올라가자 기존 고려 국방의 중심지였던 북부가 완전히 숙대밭(묘청의 난+조위총의 난+1차 여몽전쟁 손실)이 된 상태에서 남부에서 의병이 일어나 항쟁을 벌였다.] 기존에 향촌세력이 이끌던 지역방위 집단을 중앙의 영향력 아래 넣고 외침에 대비해 꾸려놓은 예비대가 전혀 예상 못한 전란으로 붕 떠버리자 기존 계획대로면 지방관 아래 장교 역할인 유림들이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일어난 집단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근거지가 아니라도 적극적으로 교전에 나섰다는 점과 근왕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왕이 어찌되든 말든 신경 안썼던 고려때의 향촌방위체제와는 차이가 크며, 의병활동을 주도하던 의병장들이 대부분 양반이었다는 사실과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살펴보면 민중사관과도 거리가 매우 멀다. 물론 저 멀리 산골짜기의 순박한 시골 청년이 외적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분연히 무기를 들고 의병대에 합류했다면 저 말이 맞다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양반으로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었던 의병장이나 현대 예비군처럼 어차피 전쟁이 터지면 군사조직으로서 참전하게 되는 의병 자체가 나라에게 받은 은혜가 볼 수 없다고 보긴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