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열단 (문단 편집) == 개요 == >'''의열단 투쟁이야말로 수많은 독립 투쟁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감동적인 투쟁이었다.''' >----- >- 언론인 故 송건호 선생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 당시 [[일본군]]에서 총사령부를 일컫던 말이지만 당시에는 동아시아 전역을 불문하고 사용되었다. '혁명의 중심', '혁명의 근원지' 정도의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일본 제국|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전체주의|인류로서]] [[제국주의|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자본주의|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아나키즘|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 >- '조선 혁명 선언'[* 의열단 선언이라고도 하지만 '조선 혁명 선언'이 정확한 명칭이다.]의 마지막 구절, 단재 [[신채호]], 1923년 '''의열단'''([[義]][[烈]][[團]])은 1919년 11월 [[김원봉]]의 주도 하에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투쟁 단체였다. 의열단은 의로운 일(義)을 맹렬히(烈) 행하는 단체(團)의 약자로, 주로 [[일본 제국]]의 고위층에 대한 암살 활동이나 주요 시설에 대한 파괴 공작을 거행하였다. 이 단체를 발족한 약산 [[김원봉]]은 [[3.1 운동]]의 대중화 단계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한 [[조선인]]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다. 이로써 의열 투쟁 [[결사대]]를 조직하여 '''암살ㆍ파괴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내 동포들의 독립 정신을 환기'''시키고 나아가 이를 통하여 국내외 한인을 중심으로 혁명을 촉발함으로써 '''민족의 독립과 조국의 [[광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 같은 구상 아래 [[김원봉]]은 [[1919년]] 11월 [[윤세주]], [[이성우(독립운동가)|이성우]], [[곽재기|곽경]], [[이종암]] 등의 동지들과 지린성(吉林省)에서 의열단을 발족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