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인(구원론) (문단 편집) == 가톨릭·루터교(+감리교+성공회+개혁교회[장로교]) 공동 선언 ==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화와 루터교 세계연맹의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 1998년 6월'''[* 번역 출처: 덴칭거 5073-5074] >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은 30년이 넘는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 간 교회 일치 대화의 결과들을 요약하고 있다. 합동 선언문은 1999년 10월 31일에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세계 연맹에 의해 부록이 첨가된 공동 성명서에서 받아들여졌다. >{{{-2 출전: The 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Information Service Nr. 98 (1998/III), Vatican City, 83-86.}}} > >''3. 의화에 대한 공동 이해'' >14. 최근 루터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경에서 선포된 복음을 함께 듣고 특히 신학적 대화를 나눈 것은 의화에 대한 이해 안에서 공통점을 이끌어 냈다. 그것은 근본 진리 안에서 의견 일치를 포함한다. 개별 서술 안의 다양한 전개는 근본 진리와 일치를 이룬다. > >15. 의화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업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공동 신앙이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은 의화의 근거이며 전제이다. 따라서 의화란 그리스도 자신께서 우리의 의로움이시며, 우리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그 의로움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공동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으로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선행을 하도록 하시며 부추기시는 성령을 받는다.[* (문헌 내 주석)"모두 한 분 그리스도 아래"(''All under One Christ''), Nr. 14: ''Growth in Agreement'', 241-247 참조.] >16.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이 구원을 받으면서,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화된다. 신앙 자체는 말씀과 성사 안에서 신자 공동체에서 활동하시고,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완성하시는 신자들의 삶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 >17. 우리는 의화에 대한 메시지가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대해 신약 성경에 나타난 증언의 중심을 가리키고 있다고 공동으로 확신한다. 이 메시지는 우리 죄인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용서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자비 덕분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 자비를 우리는 선물받을 뿐이며, 믿음 안에서 얻지만, 어떠한 형식으로도 보답할 수는 없는 것이다. >18. 따라서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전개하는 의화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 교리의 한 부분만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내적인 연관 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신앙 진리와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외화 교리는 교회의 모든 가르침과 실천이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푀할 수 없는 시금석이다. 루터교 신자들이 이시금석의 고유한 의미를 강조한다면, 그들은 모든 신앙 진리의 연관성과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 >가톨릭 신자들이 여러 시금석을 따를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의화 메시지의 특별한 기능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루터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공동 목적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분이신 중개자(1티모 2,5-6)로서 모든 것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분이며,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당신 자신을 주시며 당신의 새로운 선물을 선사하신다. … > >''5. 도달한 의견 일치의 의미와 영향'' > >43. 의화 교리의 근본 진리 안에서 우리의 의견 일치는 교회의 삶과 가르침에서 실행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한 여러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들은 특히 하느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의 관계, 교회론, 교회 안의 권위, 교회의 일치, 직무와 성사, 마지막으로 의화와 사회윤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도달한 공동 이해가 그러한 설명을 위한 적절한 토대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 >'''[[https://cbck.or.kr/Notice/12000618?page=315|세계감리교협의회와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 > >'''감리교 성명서''' >1. 루터교 세계 연맹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식 승인을 거쳐 1999년 10월 31일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 교회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성명서”에 서명함으로써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확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얻어지는 의화 교리의 기본 진리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분명하게 설명한 이 실질적인 합의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가 16세기 서구 교회 분열의 주요 원인이었던 신학적 논쟁과 관련하여 중요한 합의에 이르렀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 >2. 세계감리교협의회에 소속된 우리 교회들은 이 동의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서 설명하는 의화에 대한 공동 이해(15-17항)가 감리교의 교리에도 부합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특히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삼위일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다음 항들을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 >>15.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의화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역사(役事)라고 확신합니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의화의 토대와 전제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입니다. 그래서 의화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의(義)가 되심을 뜻하며,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여 이 의(義)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함께 고백합니다. 우리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께 수락되어, 우리를 선행으로 준비시키고 부르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받게 됩니다. >>16. 모든 사람은 하느님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이 구원을 받을 때에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의화됩니다. 신앙은 그 자체로서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이 성령께서는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일하시면서, 동시에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완성으로 이끄실 삶의 쇄신으로 신자들을 인도하십니다. >>17. 우리는 또한 의화 메시지가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대한 신약 성경 증언의 핵심으로 이끌어 간다는 확신을 공유합니다. 곧, 죄인들로서 우리가 얻게 되는 새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선물로 부여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받게 될 뿐, 결코 어떤 방식으로도 공로로 취득할 수 없는, 용서하고 새롭게 하는 자비의 덕임을 말해 줍니다. >3. 우리는 종교 개혁 이래로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의화 교리의 몇몇 중요한 쟁점들에 관하여 공동으로 선언한 내용에 동의합니다(공동 선언문, 19.22.25.28.31.34.37항 참조). 나아가 우리는 이 쟁점들에 관한 루터교와 가톨릭 교회 각자의 입장에 대한 설명(공동 선언문, 20-21.23-24.26-27.32-33.35-36.38-39항)을 수용하며, 이러한 강조점의 차이가 두 교회 어느 쪽과도 감리교를 갈라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 세계연맹: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을 위한 공식 공동 성명서와 공식 합동 선언문의 부속 문서(Annex), 1999년 10월 31일'''[* 번역 출처: 덴칭거 5081] > >공식 공동 성명서로써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와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이 인준되었다. 동시에 두 당사자는 대화를 계속 이루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첨부된 부록(Annex)은 양편이 도달한 의견 일치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전의 상호 교리 판견들은 더 이상 오늘날 대화 당사자들의 교리와 맞지 않는다. >{{{-2 출전: The Pontifical Councio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Information Service Nr. 103 (2000/I-II), Vatican City, 4-6.}}} > >…더욱 완전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다양성 안의 일치에 이르기 위하여, 또 여전히 남아 있는 차이점들 안에서 서로 "화해"를 이루고, 더 이상 분열시키는 힘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명료화 작업으로서, 공동 선언문 자체에서 특별히 언급된 쟁점들(선언문, 43항)에 대하여, 이미 이루어진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지속적인 대화가 각별히 요청된다. 가톨릭 신자들과 루터교 신자들은 의화 메세지를 오늘날의 인간들에게 적합한 언어로 설명하고자, 그리고 우리 시대의 개인적 관심사와 사회적 관심사 양편과 관련시켜 이해하고자, 공동의 증언 안에서 교회 일치적으로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이 서명 행위로써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은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을 전체적으로 추인한다. > >'''공식 공동 성명서의 부속 문서''' > >1. 이하의 설명은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에서 의화와 기본 진리와 관련하여 도달된 합의를 강조한다. 그래서 과거 시대의 상호 단죄들은 합동 선언문에서 발표된 것과 같은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의 의화 교리들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게 된다. > >2. "우리는 함께 다음과 같이 고박한다. 우리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고, 우리를 선행으로 준비시키고 부르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받게 된다"(선언문, 15항). >가) "우리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동시에 죄의 구속력(拘束力)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신다는 것을 … 함께 고백한다"(선언문, 22항). 의화는 죄의 용서이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의 선물을 베풀어 주심"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선언문 22항).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로마 5,1).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1요한 3,1). 우리는 성령의 활동에 의해서 진정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새로워졌으며, 우리 안의 그분의 역사에 언제나 의지할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의화된 이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죄인들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1요한 1,8-10; 참조: 선언문, 28항).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저지릅니다"(야고 3,2). "뜻 아니한 허물을 누가 알겠습니까? 숨겨진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해 주소서"(시편 19,13). 그리고 우리는 기도할 때에 오직 세리와 같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이것이 우리의 전례들 안에서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함께 다음과 같은 권유를 듣는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로마 6,12).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죄의 권세와 그 작용에서 오는 끊임없는 위험을 상기시켜 준다. 가톨릭 신자들과 루터교 신자들은 합동 선언문 29-30항에서 표명한 것과 같이 이 주제에 대한 상이한 접근 자세에도, 함께 이러한 정도까지, 의인인 동시에 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을 이해한다. >나) "사욕 편정"이라는 개념은 가톨릭과 루터교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루터교의 고백 문서들 안에서 "사욕 편정"은 인간 존재의 자기 추구 욕망으로서, 영적으로 이해된 법의 빛으로 볼 때 죄로 간주된다. 가톨릭의 이해에서 사욕 편정은 세례 이후에도 인간 존재 안에 남아 있는, 죄로부터 오고 죄를 향하도록 압박하는 한 경향이다. 여기에 포함된 상이성에도, 루터교의 관점에서 욕망은 죄가 공격을 가하는 틈이 된다. 죄의 세력 때문에 전체 인간 존재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경향을 지닌다. 이 경향은, 루터교와 가톨릭 양편의 개념에 따를 때,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원초 계획과 부합하지 않는다"(선언문, 30항). 죄는 인격적 성격을 지니며, 그렇기에 인간을 하느님과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낡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고,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결여이다. >세례에서 선사된 구원의 실재와 죄의 세력에서 오는 위험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죄의 용서와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성의 쇄신이 강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화된 이 또한, "공격을 가하는 죄악의 세력 앞에 끊임없이 내던져져 있으며(로마 6,12-14 참조), …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에 대하여 평생 투쟁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선언문, 28항). > >다) 의화는 "오로지 은총에 의해서만" (선언문, 15-16항),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발생하고, 인간은 "행위와 상관없이"(로마 3,28; 참조: 선언문, 25항) 의화된다. "은총은 신앙이 한 인간 안에서 시작될 때 뿐만이 아니라, 신앙으로서 존속하는 한, 신앙을 이룩한다"(토마스 아퀴나스, 「신학 대전」II/II 4, 4 ad 3). 하느님의 은총의 역사(役事)는 인간의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곧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구원을 위하여 애쓰도록 부름 받는다(필리 2,12 이하 참조). … "성령께서 말씀과 성사들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재생과 쇄신의 당신 역사를 시작하시는 즉시,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협력할 수 있고, 또 협력하여야 한다는 것이 확실히다"(협약 정식, FC SD II,64-65; BSLK 897,37 이하). >라) 의화된 이가 믿음과 바람 그리고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나누는 친교인 은총은 언제나 하느님의 구원과 창조의 역사에서 받게 된다(선언문, 27항 참조). 그러니 이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 의화된 이들의 책무이다. 선행을 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신앙을 실천하도록 권유하는 것이다(BSLK 197,45 참조). 의화된 이들의 선행은 "그들의 소명을 확인하기 위하여, 곧 다시 범죄함으로써 소명으로부터 추락하지 않도록 행해져야 한다"(Apol. XX,13; BSLK 316,18-24; 2베드 1,10 관련. 또한 FC SD IV,33; BSLK 948,9-23 참조). 이러한 의미에서, 루터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은 합동 선언문 38항과 39항에 언급된 "은총의 보존"에 대해서 함께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의화된 이들에게 전제되거나 뒤따르는 것이 무엇이든, 신앙의 자유로운 선물은 의화의 바탕도 아니고 그것을 공로로 받게 되는 것도 아니다"(선언문, 25항). >마) 의화로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게 된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포함한다.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로마 6,5; 참조: 요한 3,36; 로마 8,17). 최후 심판 때에, 의화된 이들도 그들의 행업에 따라 심판받게 될 것이다(마태 16,27; 25,31-46; 로마 2,16; 14,12; 1코린 3,8; 2코린 5,10 등 참조).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에 찬 선고가 당신의 뜻에 일치하는 우리 삶과 활동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승인하실 것이라는 심판을 대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 안에서 그릇된 모든 것은 드러날 것이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지 않을 것이다. 협약 정식 또한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신앙인들은 성령꼐서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선행들을 행하여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명백한 명령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저들과 더불어 기뻐하시고, 현세와 미래의 생활에서 그들에게 상급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FC SD IV,38). 어떠한 상급도 우리가 주장할 권리를 지니지 않는 은총의 상급이다. > >3. 의화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척도이며 시금석이다. 어떠한 가르침도 이 기준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화 교리는 "우리 교회들의 모든 가르침과 실천을 지속적으로 그리스도께 향하도록 하는 불가결한 기준이다"(선언문, 18항). 이와 같이 의화 교리는 교회의 근본적인 삼위일체 신앙 고백의 전 맥락 안에서 그 나름의 진리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하느님께서 성령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고, 그분의 새롭게 하시는 선물을 부어 주시는, 곧 그리스도를 한분 중개자(1티모 2,5-6)로서 그 무엇보다도 신뢰함을 공동의 목표로 한다"(선언문, 18항). > >4. 가톨릭 교회의 논편은 루터교 시노드나 루터교 세계연맹의 권위를 의문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은 대화를 시작하였으며, 서로를 동등한 권리를 지닌 대화 상대로서(par cum pari) 전진적으로 대해 왔다. 교회 안에서 권위에 대한 상이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두 대화 당사자는 상대방의 교리 결정 과정을 존중한다. 앞서 서술했던 대로 현대에 와선 의인론으로 갈려졌던 서방교회 중 일부 교파들이 의인론 합의를 통해 대화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가톨릭교회에선 1999년 루터교회, 2006년 감리회와의 의인론 합의를 통하여 어느 정도 일치를 이뤘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 원죄의 결과 모든 인간은 의인(義認)이 필요하다. * 하느님의 은총은 값없이 주어지고, 의(義)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혜이다. * 우리는 의인되므로 하느님 앞에 의롭다고 선언 받는다 * 의롭다 하심 받은 자들은 모두 성령에 의해 계속 새롭게 세워지고 선행할 수 있는 동기와 능력을 제공받는다. 물론 가톨릭과 루터교, 감리교의 의인론이 모두 똑같아진 것은 아니지만, 신학적 차이를 단순화하여 슬로건화[* 예: "너희는 행위구원론"/"너희는 실천 없는 죽은 믿음"]하는 것을 방지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가톨릭과 칼뱅주의의 차이급라면 모를까, 가톨릭과 루터교/감리교의 의인론은 문외한들이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단순화시키기에는 그 차이가 굉장히 미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선언에 참여하지는 않았더라도 칼뱅주의 교단들 및 성공회 등 다른 주요 교단들도 개신교 내부의 교류를 통해 영향을 주고 받기에 과거보다는 분명히 가톨릭-개신교간 적개심이 상당히 누그러진 상태이다. 물론 의인론 외에도 결코 하찮다고 여길 수 없는 차이점들이 현실적으로 많이 있으나, 분열의 원심력으로 작용하던 의인론이 대화의 구심력으로 작용하도록 바뀌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역사적 발걸음이다.[* 가톨릭과 개신교애서 각각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꼽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http://m.cpbc.co.kr/paper/view.php?cid=464057|#1]][[http://m.cpbc.co.kr/paper/view.php?cid=465269|#2]][[http://m.cpbc.co.kr/paper/view.php?cid=466442|#3]])와 카를 바르트(Karl Barth[[http://chedulife.com.au/20세기의-대표적인-신학자-카를-바르트-칼-바르트-karl-barth-1886/|#]])의 관계 및 대화를 다룬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폰 발타살은 바르트에 대한 저술을 통해서 특히 두 분야에 대해서 숙고한 것으로 보인다. 한 분야는 신론, 창조론, 그리고 은총론과 관련한 것이고 또 다른 분야는 교회론과 성사론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분야라고 폰 발타살은 말한다. 즉 신론, 창조론 그리고 은총론이 다른 것들보다는 우선한다는 것인다. 왜냐하면 교회론과 성사론은 첫 번째 분야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그는 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분야는 '근본적 그리스도 중심주의'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및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단지 바르트와 폰 발타살 사이에서의 일치만이 아니라 개신교와 가톨릭교회 사이에서도 일치를 이룰 수 있는 내용이다. 교회론과 성사론을 포괄하는 두 번째 분야에서는 서로 주장하는 바가 많이 다르고 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기에 당분간은 일치된 의견에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간주된다. '''두 번째 분야에서 드러나는 신학적인 과제는 교회분열을 야기하는 신학적 문제들이 과연 첫 번째 분야로부터 정당하게 그 근거를 갖고 있는지 여부를 탐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과제는 교회분열 이후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 온 양측의 입장 모두가 과연 첫 번째 분야로부터 정당하게 도출되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상호 인정이 가능한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나아가서 서로 간에 극도의 인내심이 요구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폰 발타살은 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일치를 막는 불필요한 신학적 근거들이 제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교회론과 성사론에서는 아직도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을 보이지만 바르트나 폰 발타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교회분열의 주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67535|〈개신교 신학의 가톨릭적 수용 가능성: 칼 바르트와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신학적 대화를 중심으로〉]]. 이규성 S.J.)] 의인론에서 아직 신학적으로 갈리는 문제는 인간론 부분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이다. 가톨릭에서는 인간안에 내재적인 의로움이 있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대로 자유의지속에 선과 악이 있지만 악으로 균형추가 심하게 기울어있어 악을 행할수 밖에 없다고 본다.] 하느님의 은혜가 주입된다고 보는 측면이라면 개신교[*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지만 또는 본래의 모습이 왜곡되었지만 하느님의 선재은총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다는 감리교는 절충안에 가깝다.] 에서는 완전히 타락하여 내적인 의로움이 없고[* 루터와 칼뱅은 인간은 악으로 완전히 타락하여 자유의지는 죄를 짓는 방향만으로 간다고 본다. 결론은 비슷하지만 신학전제와 개념은 다르다.] 오로지 하느님의 의로움이 전가(Imputation)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 하나는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의인(義認)을 죄인인 인간이 다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계약으로 바라보지만, 그 관점이 조금 다른데, 개신교는 법정적 의미처럼 해석하여 의인을 사건(event)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 가톨릭은 인간관계처럼 해석하여 의인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 일부 교파들은 성화단계에 있어선 많은 부분의 일치를 이루었는데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 온건 [[가톨릭]] 신학자(콘타리니 추기경)와 이미 온건 개신교 신학자(필리프 멜란히톤) 이래 거의 동일한 개념을 완전히 서로 다른 개념으로 오해를 했던 측면이 크다고 본다. 가톨릭에서든 개신교에서든, 주님 앞에서 공로를 내세우는 인간의 태도를 비판하지만,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 갈라디아서 5장 17절, 공동번역]하다. 야고보가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 공동번역]라고 하고 바울로가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린토1서 13장 2절, 공동번역]라고 할 때 둘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며, 다만 바울로가 '사랑'이라 말한 것을 야고보가 '행동'이라 말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로가 '사랑'이라 말하고 야고보가 '행동'이라 말한 것을 가톨릭과 개신교 둘 다 중시한다. 비록 구체적으로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 갈라디아서 5장 17절, 공동번역]의 범주에 무엇 무엇이 들어가는지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시선이 다르지만. 결론적으로는 분파적인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이 있다는 대전제는 모두가 공유한다. 이외에도 무수한 성경구절에 따라 사람마다 또한 의견 차이가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일 수 있는 것도 결국 가장 중요한 이 교리는 상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직 은총,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진정한 믿음에는 행위가 따른다. 개인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자리잡았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변화를 주게 마련이다. 단순하게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사랑 없이도 이런저런 행위(선물 등)가 있을 순 있겠지만, 참사랑이 있는데 이게 행위로 표현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나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종전과 같은 상태로 살테야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경계로 사용된다. 1999년 천주교와 루터교회가 공동선언을 한 이후 주요 교단이 차례로 이 선언에 동참하였다. 세계감리교연맹(2006), 세계성공회협의회(2016), 세계개혁교회커뮤니온-장로교(2017). 이로써 의인론에 국한하여 서방교회 계열의 주요 교단은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루었다. [각주] [[분류:기독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